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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되신 수월스님~행복의 문 - 법문, 좋은글/○--고승열전 2007. 12. 4. 21:53
<달이 되신 수월스님>
◇ 삼십대에 천장암에서 도를 이룬 후 20년간 주로 백두산 기슭 만주지방에서 보림행을 한 수월스님은
만주에서 독립투쟁을 하는 조선 민초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셨다.
수월스님은 1912년 간도 땅에 들어가 1928년 그곳에서 열반하기 까지 17년간을 간도의 관음으로 사셨다.
마지막 열반하실 때는 만주 나자구 지역에 있던 관음사에 계셨다. 그동안 품팔이하고 농사일하여 푼푼히 모은
돈으로, 국경을 넘는 수많은 조선 동포들에게 짚신과 주먹밥을 주어 배고픔을 달래주고 삶의 희망을 주셨다.
또 병이든 가난한 동포들에게 관음의 손길이 되어 병을 낫게 해주셨다. 그동안 수월스님은 밤에도 전혀 잠을
자지 않으시고 대비주삼매에 드신 상태에서도 짚신을 만드셨다.
◇1928년 무진년 하안거 (음력 4월15일~7월15일/ 양력 6월 2일~8월 29일)때 모처럼 대중들과 함께 자리를 깔고
앉았다. 해제 다음날 점심공양을 끝내고 대중들과 한잔을 마신 후 대중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 개울에
가서 몸 좀 씻을 텨.”하고 화엄사 왼 쪽 개울가로가셨다. 얼마 후 한 스님이 빨래하러 갔다가 수월스님이
열반에 드신 것을 보고 대중들에게 알렸다.
◇ 목욕을 마친 수월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개울가 바위 위에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잘 접어서 갠 바지저고리와 새로 삼은 짚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 자연스런 결가부좌, 쭉 편 허리와 가슴, 바로 세운 머리, 깊이 감은 눈과 야물게 다문 두 입술, 그리고
배꼽아래 신비스런 선을 타고 내려와 함께 포개져 있는 두 손과 불꽃 튀기듯 맞닿아 있는 두 엄지손가락. >
그것은 누가 보아도 죽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개울물에 몸을 씻은 번뇌 없는 노스님이 잠시 바위에 앉아
늦여름의 매미소리를 즐기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 아~ 도대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이렇게 까지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아니다.
이것은 나고 죽음이 사라진 도인의 경지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또 하나의 삶의 진실인 것이다.
이렇게 가부좌하여 앉아서 열반에 드시는 것을 불가에서는 옛날부터 좌탈 입멸이라 부른다.
이것은 도인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 수월스님이 열반에 드신 후 칠일 간 대방광이 있었고, 호랑이들이 밤마다 떼 지어 울었고, 까치는 하늘을
가리어 울었다.
수월스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북간도의 동포들에게 더 없는 슬픔이었다. 그들은 또 하나의 고향을
잃었으며 또 다른 어머니를 여읜 것이다. 조선 사람들이 간도의 파도 같은 길을 타고 하얗게 몰려왔다.
그래서 수월의 다비식은 닷새 만에 치러야 했다.
◇ 수월선사의 열반에 대한 내용이 만해 한용운이 발행한 <불교>지 1929년 1월호에 실려있다.
- 이상 / 김진태 지음(도서출판 학고재) / <물속을 걸어가는 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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