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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중흥의 꽃을 피운 탄허
    행복의 문 - 법문, 좋은글/○--고승열전 2007. 12. 26. 09:57

     

     불교중흥의 꽃을 피운 탄허

     

    ◇ 탄허(呑虛) 스님


    [1] 육신의 옷을 마음대로 벗으시고~  

     

     

     

       단기 4316(1983)년 6월5일 유(酉)시(음력 4월 24일/계해년, 정사월, 갑자일, 계유시) 가 다가오고 있었다.

       탄허 스님이 육신의 옷을 벗고 실상의 세계로 가실 때가 된 것이다. 월정사 대중스님들이 모두 모였다. 이제 탄허 큰 스님은

      중생계에 법열과 법력을 집중하여 시현하시고, 열반의 법비는 탄허 큰 스님의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제자인 환훤스님이 큰스님께 물었다.

       “스님! 여여하십니까?”  “그럼, 여여하지, 멍충이”

       이어 대규스님이

       “ 사람이 세상에 머무는 것은 인연법인데, 지금 스님께선 세상 인연이 다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들에게 좋은 말씀을 내려주십시오.” 했더니.

       “ 일체 말이 없어.” 하시고, 이어 “유시(酉시)야?”고 물으심에,

       시자가 “ 예, 유시입니다.” 라고 답하니~ 큰스님께서 곧 열반에 드셨다.

       때는 단기 4316년 6월 5일 酉시 18시 15분 이었다. 세수 71세, 법랍 47세로 열반에 드시었다.


    [2] 화엄사상 드날리고~

       백 천개의 냇물이 바다에서 만나듯 자유자재로운 대생명의 빛을 나타내는 화엄사상으로 실천불교에 앞장섰던 탄허 대종사!

    예지력이 뛰어난 큰스님께서는 일찍이 6.25사변. 월남종전, 울진.삼척 무장공비사건, 10.26사건 등을 예견하셨고,

    정역(정역)원리에 따르면 앞으로 지구에 잠재하는 불기운이 북방의 빙산을 녹여 지각대변동이 올 것이며,

    지구축이 바로잡히는 제8미륵불의 사회가 오되, 그 세계의 주축은 유.불.선이 통합되는 한국이라고 예언하셨던~

    탄허 큰스님!


    [3] 탄허 스님 생애 

        탄허스님은 단기 4246년(1913년) 음력 1월 15일 (계축년/무인월/임신일) 전북 김제 만경면 대동리 490 에서 부친 김 홍규와

     어머니 최 율녀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적 한문을 배우고, 특히 기호학파의 거두 이 극종선생으로부터 유학 및 도교학을

     수학하였다. 17세 때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다. 유학의 진수를 터득하였으나 우주의 진리에 대한 갈증을 풀 수가 없어 1931년

     오대산 월정사 방 한암 대종사와 우주 및 인생의 근본 이치에 대한 서신 문답을 하였다.

      1934년 세납 22세 방 한암 스님을 은사로 오대산 월정사에서 출가득도 하였다. 이때 법명은 택성이었다. 이후 3년간 묵언 참선하고,

      1937년부터 15년간 오대산 상원사에서 방한 암 스님을 모시고, 불교내전 및 선학일체를 수학하였다.

      1955년에는 오대산 수도원장, 1964년 동국대 선원원장, 1972년 화엄학 연구소장,

      1974년 신화엄경합론 전 47권 간행, 1983년 6월 5일 세수 71세 법랍 49세로 입적함.


    [4] 스님의 업적


    ◇ 불타의 근본종지 확연히 깨우치다.~

       탄허스님은  22세에 한암 선사를 은사로 출가한 후, 3년간 묵언 참선하였고, 한암 대선사께서 “참선에 힘이 붙었으니 이 힘을

    근본으로 경전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이에 탄허 스님은 한암스님을 모시고 두문불출하고 15년간 참선과 경전공부를 하였다.

    더디어 불교의 경전인 <<화엄경>>의 진수를 터득하고, 불타의 근본 종지를 확연히 깨쳤다.

       그 때 탄허 스님은 인가를 받아 방 한암 대선사로부터 “허공을 삼킨다.”, “우주를 삼킨다.”라는 뜻의 “탄허(呑虛)”라는 법호를 받았다.

      

    ◇ 오대산 종풍 일으키고

       탄허스님은 또 새벽 2시면 날마다 일어나 수시간 동안 참선으로 선정에 드셨는데, 이러한 습관은 출가 후 열반 시까지 50년간

    계속된 생활이었다. 한암스님 열반 후 오대산 월정사 조실과 강원도 종무원장을 맡으시고 특유한 오대산 종풍으로 중생교화에

    적극 나서시게 되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뜻을 펴기 위해 도의적 인재와 불교엘리트 양성을 위해 1955년 오대산 수도원을

    창설하였다.

     

      ● 이후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교류와 국제포교에 관심 기울여 인도, 일본, 대만, 태국, 미국 등을 방문하여 화엄학, 참선, 불교학,

    비교종교학, 동양학에 관한 특별 법문을 하였다.


     ◇ 탄허스님의 사상

     

       탄허대종사는 민주주의의 근본은 도덕정치에 있다고 설파했으며, 민족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해 <신화엄경합론> 간행의 대작불사를

    발원하였고, 단기 4293년부터 하루 14시간 번역에 정진하여 10년만인 4303년 봄 6만 3천장의 번역 원고를 탈고 하였다.    

     

      ● 탄허 스님의 역경은 <화엄경> 80권, 이통현 장자의 <화엄경론>40권을 합친 120권을  정본으로 하고, 청량국사 소초 150권을

     조본으로 모두 270권을 토를 달고, 번역. 해석을 한 것이다. 또 <신화엄경합론>전 47권을  간행하였고, 능엄경, 금강경, 원각경,

     기신론, 주역선해, 노자도덕경, 장자화남경, 육조단경, 보조법어 등 30권을 합하여 무려 78권이나  저술을 하였다. 

     

                   *** 탄허는 오대산의 문수보살의 역할을 다했으며, 한국 불교중흥의  찬란한 꽃을 피웠다.***

     

     

     

                             < 자료 출처 : 현대 고승인물평전  하 / 불교전기문화연구소편/불교영상회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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