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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불교경전은 왜 많나요?(이행문=쉬운길=염불문)(804)
    불교 공부/불교입문 2017. 10. 2. 09:46



    불교경전은 왜 많나요?(804)

    (이행문=쉬운길=염불문)


    #

    인터넷으로 어떤 분이 질문했습니다.

    기독교는 성경이 1권으로 공부하기 좋은데

    불교는 경전이 많아 어렵습니다.

    1권으로 통일된 경전은 없나요?



    #

    이 법우님의 질문 매우 타당합니다.

    그런데 먼저 불교란 무엇이며

    왜 경전이 많아졌는지?

    그리고 불교를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니다.


    불교란 무엇인가?


    불교의 목적은 행복에 있습니다.

    영원한 행복을 추구합니다.

    영원한 행복의 길을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영원한 행복은 열반의 길이요, 부처의 길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배우고

    실천하는 종교입니다.


    경전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깨달으신 분입니다.

    무엇을 깨달았는가?

    진리를 깨달으신 분입니다.


    진리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연기법을 말합니다.

    연기법이란 무엇인가?

    연기란 모든 것이 관계해서 변화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불교의 핵심입니다.


    모든 것이 관계한다는 것은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가 다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으로

    어떠한 존재가 자기 홀로 만들어지거나 존재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이를 무아(無我)라 합니다.

    또 모든 존재는 이렇게 관계하면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변화한다는 것은 어떤 존재로 영원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항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를 무상(無常)이라 합니다.


    즉 연기법이란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가

    무아이면서 동시에 무상한 것입니다.

    관계하면서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원인이 있고 조건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인연과법이라합니다.

    불교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인식하는 중교입니다.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를 크게 3가지영역으로 나누면

    물질계, 정신계, 그리고 생명계로 나눕니다.

    그런데 물질, 정신, 생명이 모두 인연과법에 다 적용을 받습니다.


    #

    사람들의 생활상을 살펴보면

    생노병사(生老病死)를 하는데

    생노병사는 모두 고통입니다.

    태어남이 고통이요, 늙음이 고통이요,

    병드는 것이 고통이요, 죽은이 고통입니다.

    왜 고통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갈애하고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왜 갈애하고 집착을 하는가?

    그것은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왜 어리석음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인연과법을 제대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무아(無我), 무상(無常)이므로

    그 어디에도 집착하고 갈애할 필요가 없습니다.

    생노병사에도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생사의 인연이 없기에

    더 이상 생노병사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입니다.

    죽음이란 태어남이 있기에 생기는 것입니다.

    태어남이란 태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태어나고 싶은 마음은 애욕과 사랑과 미움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위해 태어날 마음을 냅니다.(탐심)

    원수갚기 위해 태어날 마음을 냅니다.(애욕)


    탐심과 애욕은 끝없는 어리석음(무명/無明)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최초의 어리석음인 무명(無明)을 벗어나면

    결국 생노병사로부터 영원히 자유롭게 됩니다.

    이를 위해 끝없이 마음을 수행해나갑니다.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해탈열반을 위해서입니다.


    불교 가르침의 핵심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는

    모두 관계하면서(무아/無我) 변화하기(무상/無常) 때문에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말라(무주상/無住相)는 가르침입니다.

    만일 이러한 진리를 모르고 살면 집착하고 갈애하며

    그 결과 고통 속에 빠져 불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를 가르칩니다.

    지금이 행복해야 미래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마음의 행복을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은가를

    항상 알아차림합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왜 행복하지 않은지 원인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집착이요, 갈애임을 찾아내고

    그 집착과 갈애에서 벗어나는 수행을 합니다.

    그래서 항상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을 알아차림하고

    인연과법으로 모든 사물을 비추어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잘 나타낸 경이 대념처경(大念處經)입니다.


    만일 법우님이 좋은 지도자를 만나

    이 대념처경 한권의 경을 잘 공부시면


    다른 경을 배우지 않아도 부처님 가르침의 진수를

    잘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의 경전은 왜 많은가?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이렇게 단순합니다만

    이것을 이해하는 데는 사람들마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근기와 수준이 천차만별하기 때문에

    그 수준에 맞게 다시 설해놓은 것이 수많은 경전입니다.

    유치원생들의 수준인 사람에게 박사정도의 학위를 가진 이론으로

    설명하면 알기도 어렵고 이해도 못합니다.

    또 대학원 수준에 있는 사람에게 유치원생 수준의 질문을 하면

    재미없어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수준에 따라 설법의 수준을 달리하니

    경전이 수많아 지게 된 것입니다.


     

    [1] 원시경전(아함경)

    부처님 당시에 인도 사람들은 약육강식에 크게 물들어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많아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맨 처음 경전은

    착한 일하면 천상에 태어나고, 악한일 하면 지옥에 태어나며

    착한 일하면 좋은 과보를 받고, 나쁜 일 하면 나쁜 과보를 받는다.”

    연연과법(因緣果法)에 근거한 가르침을 폈습니다.

    여기서 삼법인(무상/무아/), 사성제(고집멸도), 12연기에 대한 가르침을 함께

    가르쳤습니다.

    이 가르침을 듣고 배우고 믿어서, 이를 철저하게 실천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깨우쳐 열반의 경지에 도달해 아라한 까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 의심이 많은 근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의심합니다.

    아무리 착한 일해도 못살고, 나쁜 일을 많이 하는 자가 잘사는 것은 왜인가?

    부처님의 인연과법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이렇게 의심을 품는 자들을 위하여 부처님은 그들 근기에 맞는 방편 법문인

    방등경을 설하셨습니다.

    원시경전의 내용 중 주옥같은 가르침을 시()로 나타낸 것이

    바로 법구경입니다.

    이 법구경 한권만 보아도 부처님의 말씀을 잘 알 수 있습니다.


    [2] 방등경

    아함경에서 설한 부처님의 말을 듣고 믿어, 깨끗한 마음을 내어 실천하면

    그대로 열반의 경지에 들어 아라한까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실천을 잘 하지 않고 의심이 많이 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즉 오계를 철저히 실천하고 깨끗한 마음을 내어 부처님가르침을 실천하면

    누구나 갈 수 있는 열반의 길을 가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게으르고 의심이 많은 자들입니다.


    이들을 교화하기 위해 방등경류의 경전을 설하였습니다.

    비록 착한 일을 금생에 많이 하였더라도, 전생에 지은 악업의 영향으로

    악업의 과보를 받아 어려움을 받는 것이며, 비록 금생에 악한 일을 많이

    하였더라도, 전생에 지은 선업의 영향으로 선한 과보를 받고 있어

    즐거움을 누리지만, 금생에 지은 악업은 금생이나 내생이나 또는 그 다음 생에

    업의 과가 무르익으면 반드시 악한 과보를 받게 된다.

    만일 금생에 지은 착한 일에 대한 과보도 이와 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은 선악의 과보는 그가 과가 무르익으면 언젠가는 받게 된다.

    선인선과 악인악과는 반드시 평등하게 적용된다.”이렇게 설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믿음을 내어 실천을 하는 자는

    깨끗하고 평등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 열반에 들어 아라한까지 도달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어떤 이는 내가 선한 일을 했으니

    반드시 선한 과보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선한 과보를 바라는 마음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한 과보가 생기지 않으면 화를 내고

    고통에 빠지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부처님께서는 반야부 경전을 설했습니다.


    [3] 반야부 경전

    반야부 경전에서는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변화하고 무상하며 무아이니

    그 어디에도 집착할 것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무상하고 무아인 것을 공()하다고 표현하였습니다.

    나라고 하는 고정관념인 아상(我相), 너라고 하는 고정관념인 인상(人相),

    사람들이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짓는 모든 고정관념인 중생상(衆生相),

    그리고 영원히 살고 싶은 고정관념인 수자상(壽者相)을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그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는 마음, 바라는 바 없는 마음을 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래야 진실로 영원한 행복(열반)에 이르게 됩니다.

    즉 내가 착한 일을 하였다고 착한 과보를 꼭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또 하나의 탐심으로 고통의 씨앗이 되는 어리석은 망념이라는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심지어 내가 옳다고 하는 생각이나, 남에게 억지로 법을 전해주려고 하는 마음도

    바라는 마음이 있는 한탐심으로 보아 버려야 할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실천한 많은 사람들이 큰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많은 이들은 아직까지 부처님의 참뜻을 알지 못하고

    , 모든 것을 공()이야, 모든 것은 무상(無常)이요, 무아(無我)이니 허무한 것이야.

    그러니 뭐 애를 쓰며 살 것이 있느냐? 이 산중에서 자연과 더불어 조용히 살다가

    내 마음 편안하면 그것이 열반이지.” 이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에만 집착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정작 집에 있는 식구나 많은 중생들이 고통 속에 있는 것을

    외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부처님은 또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4] 법화경 경전

    중생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나만의 열반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나도 살리고 남(중생)도 살리는 보살의 길도 훌륭한 열반의 길이니라!

    그래서 아함경이나 방등경 또는 반야부 경에서 설한 바대로 수행하는

    성문들도 결국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요,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12연기법을

    골똘하게 알아차려 깨우침을 하는 연각도 열반으로 향하는 것이요,

    나도 살리고 남도 살리는 보살의 길도 또한 훌륭한 열반의 길이다.

    그러므로 삼승(三乘)인 성문, 연각, 보살이 모두 열반인 일승(一乘)을 향해가는 것이다.

    그러니 성문, 연각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중생을 함께 깨우치는 길도

    매우 훌륭한 길이다.”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불국토가 되어 이 세상이 행복해지려면 많은 대중이 사회적 깨달음을 성취해야

    합니다.

    한 두 사람만 깨우쳐서는 불국토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법화경을 믿고 따르는 법화행자도 훌륭한 수행자라 할 수 있습니다.


    [5] 정토삼부경 염불문(念佛門)

    삼승(三乘)의 길은 훌륭한 길이나 조금이라고 한 눈을 팔면 결국 생사의 미망에

    빠지게 됩니다.

    오계를 어기거나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모두 여의어

    해탈에 드는 것은 보통 중생들은 너무 어렵습니다.

    마치 그 길은 홀로 헤엄을 쳐서 태평양 바다를 건너다가 힘이 빠지면 물에 빠지듯

    수행 중 잠시라도 탐심이나 성냄이나 어리석음에 들면 생사의 바다에 빠져죽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난행문(難行門/어려운 길)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근기에 있는 일반 중생들을 위해 이행문(易行門/쉬운 길)

    가르쳐 주셨습니다.

    즉 그동안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은 스스로 내면을 밝혀가는 자력문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정토삼부경에서는 처음 시작은 타력문인데 결국 그 본질은 자력으로 향하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정토삼부경에 의지하여 매일 아미타부처님을 염하고 염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아미타불을 찾는 것입니다.

    아미타는 그 뜻이 무량광(無量光), 무량수(無量壽)입니다.

    무량광은 한없이 밝은 것으로 한없는 지혜의 광명을 말하며,

    무량수는 한없는 생명으로 진리를 말합니다.

       

    평소 한없는 밝은 부처님인 아미타불을 외우면

    이 생에 있을 때 내 마음이 부처님처럼 밝아져 마음이 지극히 편안합니다.

    만일 마음속에 탐진치 번뇌가 있음을 알아차림하면 즉시 참회합니다.

    그리고 평안한 마음 자비로운 마음이 있음을 알아차림하면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이 목숨을 떠날 때 평안한 마음으로 오직 아미타불을 염하여 극락에 태어납니다.


    극락에 태어나 아미타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교화를 받아 모든 번뇌를 여의고 다음 생에는

    반드시 부처가 됩니다. 이것은 무량수경에서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무량수경에 아미타불의 전신인 법장비구의 48원이 있습니다.

    법장비구는 이 48원을 모두 달성하지 않으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발원을 했습니다.

    무수한 세월을 닦아 48원을 모두 성취하고 부처가 되었습니다.

    그는 제18원에서 누구라도 임종시에 10번만 아미타불을 지심으로 부르면 그를 극락으로

    맞이하겠다고 원을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극락에 가서 모든 중생을 부처로 이끌겠다는

    원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극락으로 확실히 가는 이치에 대해 알아봅니다.


    사후세계로 가는 원리

    초기 경전에서 한 나이가 든 장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요즈음 나는 매우 두렵고 걱정스럽습니다.”

    장자여, 그 까닭을 이야기 해 보시오.”

    , 부처님 저는 지금 늙고 힘이 듭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며 또 죽으면

    어디로 태어날지 너무 두렵고 걱정스럽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장자여, 만일 나무의 밑동을 자르면 나무가 어디로 넘어가게 되겠소?”

    , 부처님, 나무가 조금이라도 기운 쪽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그렇다. 그것이 법이니라. 그대가 평소에 삼보를 믿고 의지하며

    공양을 하고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착한 일을 하였으니, 죽을 때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천상에 태어나리라.

    마치 나무 밑동을 자르면 조금이라도 쏠린 쪽으로 넘어가듯이.

    그러나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여래를 생각하고

    여래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착한 일을 할지니라.”

    이 말을 듣고 그 장자는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하여 져서 결국

    평안한 임종을 맞아하게 되었습니다.


    #

    그렇습니다.

    이 초기경전의 말씀과 같이 평소 아미타불을 부르고 항상 부처님 말씀을 새겨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이나 행동이나 말을 하는지를 알아차림하여

    만일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이나 행동이나 말을 하였다면 즉시 참회

    합니다. 참회합니다. 참회합니다. 부처님 참회합니다.’

    그리고 착한 일을 하여 마음의 평안하고 고요함을 얻으면 즉시 알아차림하여

    감사합니다. 부처님, 저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의 기도를 해 갑니다.

       

    비록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마음이 조금은 남아 있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렇게 살아생전 아미타불 염불을 하고 임종 시에도 지심으로 아미타불을 10

    부르면 마치 나무 밑동을 자르면 조금이라도 쏠린 쪽으로 나무가 넘어지듯

    아미타불의 세계인 극락에 태어나게 됩니다.

    아미타불이 세운 18원에 의해 자동적으로 극락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극락에 가서 아미타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무상정등각을 이루고 생사의 고해에서

    영원히 해탈하게 됩니다.

    이것이 염불법문입니다.


    #

    그러므로 불교는 결국 열반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열반은 깨달음의 길이요, 부처의 길입니다.

    정토행자는 이 염불법문에 한 치의 의혹도 없이 믿고

    염불을 행하면 됩니다.

    그러면 살아서 평안을 누리고, 죽어서는 반드시 극락에 태어나

    영원한 열반의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정토삼부경에는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이 있습니다.

    이렇게 염불문(念佛門)은 가장 쉬운 법으로

    가장 확실하게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는 길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자비불교정토회

    정인(正印)합장

    2017년 10월 1

    아미타불천일기도 804

     나무붓다야

    나무달마야

    나무승가야

     

     자비불교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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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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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파일 나무아미타불찬가.wma

     


     



    출처 : 개운선원
    글쓴이 : 正印 (남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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