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第一 (2)
- 법회가 열린 동기 (2) -
[한문]
爾時에 世尊이 食時에 着衣持鉢하시고 入舍衛大城 乞食
이시 세존 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 걸식 하실새
於其城中에 次第乞已하시고 還至本處하사 飯食訖하시고
어기성중 차제걸이 환지본처 반사홀
收衣鉢 洗足已하시고 敷座而坐하시다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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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그때 세존께서 공양하실 때가 되어,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드시고
사위성에 들어가시어 걸식하시었다.
그 성중에서 차례대로 걸식하시고 나서
본래의 처소로 돌아오시어 공양을 드셨다.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으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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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공부]
<爾> 그 이 <世> 인간세 <尊> 높을 존 <食> 밥먹을 식 <衣> 옷 의 <着> 입을 착 <持> 가질지 <鉢> 바릿대 발 <城> 잿 성 <乞>빌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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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敷> 베풀 부 <座> 자리 좌 <而> 말미암을 이 <坐> 앉을 좌 |
[해설]
(1) 이시(爾時)
“그 때에”
◇ 특정한 시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빠알리경 속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구어체에 쓰인다.
탁발하러 가시기 위한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수식어 정도로 보면 된다.
(2) 세존(世尊)이
“부처님께서”
◇ 부처님의 10호(號=이름) 즉,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 가운데 하나다.
<세존>이란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분이란 뜻이다.
(3) 식시(食時)이
“공양 드실 때가 되어감에”
◇ 부처님님의 공양 시간은 사시(巳時)이다. 사시는 9시부터 11시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빠알리어로는 오전에라는 뜻으로 본다.> 그래서 진시(辰時)에 탁발하러 가시기 때문에 식시는
진시로 보아야 한다.(6조 혜능스님)
◇ 부처님은 하루에 한 끼 사시에 공양 드셨다. 그래서 부처님께 공양올리는
시간이 사시로 관습화 된것이다.
(4) 착의지발(着衣持鉢)이
“가사를 수하시고 바루를 드시고”
◇ 초기불교의 승려들은 모두 삼의(三衣)를 기본으로 입었다. 삼의란 거처에 머물 때 상의와
하의를 입고, 외출하거나 대중처소에 나갈 때는 대가사를 수한다. 그래서 비구가 항상
소지해야할 삼의(三衣)를 입고 바루를 지니고 외출한다는 구문이다.
가사는 본래 인도에서는 분소의라 하여 못쓰게 된 천 조각을 모아 옷의 대용으로 사용하였으나,
중국에서는 승복을 입고 그 위에 따로 걸치게 되었다. 중국 기후가 인도보다 춥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변화한 것이다.
바루는 수행용 밥그릇이다. 한자라로는 응량기(應量器)라 한다. 수행의 양에 비추어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수시로 질책하는 법구(法具)이다.
◇ 의발(衣鉢)은 요즈음도 스승이 상좌에게 주는 첫 선물이며 가장 큰 선물로 되어 있다.
(5) 입사위대성(入舍衛大城)하사
“사위성으로 들어가시어”
◇ 사위성은 인도 코살라 국의 수도이며, 걸식을 위해 들어가신 것이다.
(6) 걸식(乞食)하실새
“탁발을 하셨습니다.”
◇걸식은 탁발을 의미한다. 탁발은 수행자가 직접 거리로 나가 중생으로부터 공양을 받는 것을
말한다. 탁발을 할 때는 다음 3가지의 여법한 자세가 필요하다.
1) 주정명(住正命) :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져 바른 생활(정계 正戒)에 머물고
2) 주정각(住正覺) : 음식 받음이 자타가 모두 부처님 세계에 들기 위함인 줄
알며
3) 주정위의(住正威儀) : 용모를 단정히 하며 위의를 점잖게 하여 모든 이로 하여금
환희심이 나게 해야 한다.
(7) 어기성중(於其城中)에 차제걸이(次第乞已)하시고
“그 성안에서 차례로 탁발을 하시고는”
◇ 진지를 위한 공양을 받으실 때 부귀와 빈천을 가리지 아니시고, 평등하게 공양을 받아주셨다.
부처님은 한 끼에 일곱 집을 차례로 들리시어 공양을 받으신다. 이를 칠가식(七家食)이라 한다.
이는 중생들로 하여금 평등하게 복을 짓게 하기 위함이시다.
(8) 환지본처(還至本處)하사 반사흘(飯食訖)하시고
수의발(收衣鉢)하시고
“다시 본처소로 돌아오셔서, 공양을 다 드시고, 바루를 거두시고
가사를 벗으시었습니다.”
◇ 인도에서는 탁발하고 와서 나무아래나 한적한 곳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풍습이다.
그리고 처소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구라마습과 현장은 중국 풍습에 따라
<걸식을 하여 기원정사에 와서 공양을 드신 것>으로 번역한 것이다.
(금강경 역해-각묵스님 / P34 참조)
(9) 세족이(洗足已)하시고 부좌이좌(敷座而坐)하시고
“발을 씻으시고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
◇ 인도에서는 맨발로 탁발하러 다니기 때문에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발을 씻어야 한다.
<발>을 씻으시는 것은 신업(身業)을 청정히 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부처님의 일상생활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강의]
◇ 이상 법회인유분은 법회가 이루어진 동기와 분위기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법회인유분은 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부처님의 활동을 보이고 있지만
사실 금강경에서 이 대목이 가장 중요합니다.
◇ 부처님께서는 하루에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 한 때만 공양하셨습니다.
공양은 언제나 걸식(乞食)으로 해결하시는데 걸식하러 나가실 때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부처님께서도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나가셨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하시는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걸식하여 공양하시는 일상적인 일을
『금강경』의 서두에 올려두고
이 경을 설하시는 동기로 삼았습니다.
◇ 그런데, 사실 부처님은 시봉을 받으시며, 성중에 걸식 나가지 않아도 한 끼 공양을
받으실 수 있을 터이지만, 누구에게도 그 일을 대신 시키지 않았습니다.
대중들과 똑같이 진시에 사위성에 걸식 나가시고, 차례로 7집에 동양을 받으시고,
처소로 돌아 오셔서 공양 후 발우와 가사를 거두시고 정좌에 들어가셨습니다.
◇ 부처님은 일상적인은 모두 손수하십니다. 부처님을 위해서 타인에게 시키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부처님은 항상 대중과 함께 사셨습니다.
부처님은 어떠한 권위도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 그렇습니다. 진리는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 행위 속에 진리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진리 광명으로
복 없는 자에겐 복의 인연을,
복 있는 자에겐 복을 지킬 인연을 주시기 위해
대중들과 똑같이
매일 7집의 공양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루도 쉬지 않고
진리의 말씀을 몸으로,
말로,
무언으로 설하십니다.
◇ 부처님의 큰 제자 가섭존자(迦葉尊者)는 조그만한 복이라도 짓게 하느라고
가난한 집만을 찾아다녔습니다.
반면에 수보리(須普리)는 신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부잣집만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것을 보고 유마 거사(維摩 居士)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가난하다
부자다하는 차별을 내어 마음이 평등하지 못한 처사라고 경계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선별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뜻에서 차례대로 일곱 집에서 걸식하셨습니다.
● <마음에 상(相)이 없으면 차별(差別)이 없으며, 상을 떠난 반야 지혜의 안목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음>을 부처님께서 몸소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 여기 제1분은
금강경의 무아(無我), 무소유(無所有), 무차별상(無差別相),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등
진리의 말씀을 부처님께서
몸으로 설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지구상의 각 성직자들의 수장들이나
그 휘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권위에 찬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여주고 있지않습니까?
제1분은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몸으로 설해주시는 것입니다.
자비 광명, 진리의 말씀을 한꺼번에 무언으로 설하고 있습니다.
반야의 광명이 환히 비치고 있는 곳에는
어떠한 무명의 어둠도 숨을 곳이 없습니다.
다 밝혀집니다.
이것은 이 경(經)의 동기이면서 종지(宗旨)입니다.
『금강경』의 모든 것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개운선원(개운정사) 남광 합장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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