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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불교의 유입과 구산선문의 성립
    불교 공부/불교의 이해 (남광 리포트) 2007. 12. 5. 13:20

     

    < 제목 : 선불교의 유입과 구산선문의 성립>

     


    1. 禪法의 유입



       통일시대의 불교의 전성기는 30대 문무왕대 부터 36대 혜공왕대 까지이며,  이 시기에는 교학연구와 실천교화 등 불교의 모든 방면에서 극치를 찬란한 불교문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제 35대 경덕왕대(742~764)에 이르기까지 전성기의 극치를 보이던 불교가 그 후 차츰 침체되어갔다.

      

     침체되어가던 통일신라 말기에 새로운 불교의 풍조가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禪佛敎였다. 이 禪風은 중국에서 菩提達磨 이래 종풍이 확립되어 선종으로 성립 발전된 것이다.  이 선종은 중국의 선종 6조 혜능(혜능:638~713)에 이르러 南頓禪(남돈선: 惠能/ 南宗)과 北漸禪(북점선: 神秀/ 北宗)으로 나누어지면서 그 기세가 극성할 무렵 많은 신라 승려들이 중국에서 선법을 배워왔다.


    (1) 중국 禪宗(禪法)의 이해

     

       가. 선종의 시원과 의의


      은 마음을 고요히 하고 수행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내적의식에 대한 조용한 통찰에 몰두하게 하는 목적을 가진 종교적 수행을 말한다.


       중국불교 초기에 선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던 승려는 도안과 혜원

    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국 선종은 보리달마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1) 菩提達磨(初祖~528)


       菩提達磨는 인도승려로 520년 중국에 도착했으나, 양무제와 소득 없는 면담이후 낙양에 가서 숭산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면벽좌선을 하였다.

       이락(伊落)에 있던 神光이 달마의 품성을 사모하고 찾아와 밤새도록 눈을 맞고 밖에 섰다가 팔을 끊어 求道의 정성을 표하매, 드디어 곁에서 시봉하도록 허락하고, 慧可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소림사에서 9년 면벽 후 혜가에게 깊고 비밀한 종취와 가사, 불발우, 릉가경을 전하고 영안 1년 10월에 입적하였다.


       2) 慧可(제二祖 487~593)


       보리달마의 제자인 제二祖는 慧可로 神光이라는 승려였는데, 그의 팔을 잘라 달마에게 信心을 증명하였고, 초조 달마의 법을 이어받았다. 혜가는 552년 승찬(僧粲)에게 법을 전하고, 鄴都에 34년간 머물렀다. 뒤에 관성현 광구사에서 <열반경>을 강론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이를 시기한 변화(辨和)의 참소로 수나라 개황 13년 혹형으로 죽었다. 

       

       나. 禪脈


       1) 三祖 승찬(僧粲 ?~606)


       서주(徐州) 사람으로 慧可의 宗要를 잇고, 서주 환공산에 은거하였다. 후주(후주)의 무제가 불교를 크게 탄압할 적에 대호현 사공산에 왕래하며, 일정한 주소 없이 10여년을 지냈다. 수나라 개황13년(593년) 도신(道信)을 만나의발을 전하고, 환공산에서 크게 대중 교화를 하다가 606년 10월 입적하였다.  


       2) 四祖 도신(道信580~651)


       중국 기주 광주사람으로 14세(593년)에 3조 승찬의 제자가 되어 시봉하고 불도수행을 하다가 승찬의 의발을 받았다. 승찬은 여산 대림사에서 대중을 거느리고 교화하였다. 624년 기주에 돌아와 4부 대중을 크게 교화하였고, 제5조 弘忍에게 법을 전하였다.

       

       3) 五祖 홍인(弘忍602~675)

       기주 황매현 사람으로 도신의 제자가 되어 心印을 전해 받고, 기주 쌍봉 동산사를 중심으로 대중교화에 힘쓰다, 제6조 혜능에게 법을 전하고, 당나라 상원 2년에 입적하였다.


     4) 북종선과 남종선의 시작


      ◇ 北宗 六祖  神秀(600~706) 

       개봉사람으로 50세에 기주 쌍봉 東山寺에서 5조 홍인을 뵙고 제자가 되었다. 홍인이 입적한 뒤 강릉 당양산에 있으면서 측천무후의 귀의를 받고, 궁중의 내도장에 가서 우대를 받았다. 중종황제의 존경을 받고, 낙양에서 國師로 불려졌다. 706년 입적하였고, 시호를 大通禪師라 하였다.


      ◇ 南宗 六祖 慧能(638~713)

      남해 신흥 사람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땔나무를 팔아 어머니를 봉양하다가, 어느날 장터에서 한 노승이 <금강경> 읽는 것을 듣고 출가할 발심을 하였다.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당 함형(670~674) 때 소양으로 갔다가 무진장(無盡藏)비구니가 <열반경> 독송함을 듣고 그 뜻을 요해하였으며, 뒤에 홍인의 제자가 되어 3년간 방아를 찧으며, 바보 행세를 하였고, 혜능의 사람됨을 이미 안 5조 홍인에게서 법을 전해 받았다.

      5조 홍인의 명령에 따라 676년 남방으로 가서 교화를 펴다가, 후일 조계산에 들어가 대법을 선양하였다. 무 태후와 �화 홍제가 글을 보내어 초청하였으나, 병을 핑계하여 가지 아니하고, 당 선천 2년 8월 입적하였다.  

        

      ◎ 6조 혜능의 입적후 734년 神會(670~762)라고 하는 남방 승려가 신수로 이어진 선종의 법맥을 공격하였고 이 싸움에서 신회가 승리하였다.

      이로서 北宗禪이 사라지게 되었으며,  이후 후대에 임제종, 조동종, 위앙종, 운문종, 법안종 등 선종의 종파를 일으킨 유명한 선사들이 나타났다.


    다. 禪宗의 가르침 ( 禪이란 무엇인가?)


       선이란 영혼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실재, 세상의 모든 차별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에 두루 퍼져있는 근본적인 단일자인 실재의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직관적인 정신수련법이다.  


        실재란 마음이라고도 하고 모든 중생에게 있는 불성이라고도 한다.

    실재는 空하여 말로 표현할 수도, 생각으로 인식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하여 선사들은 자주 침묵이나 진리 표현의 부정에 의존한다. 이 실재 또는 불성은 직관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완전하게 그리고 한꺼번에 이해된다.


        내면에 있는 불성을 깨달았을 때 선 수행자는 모든 존재의 무차별적 일원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선종의 모든 종파들이 가장 깊은 내면의 마음을 깨닫는다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이 목적에 이르기까지 각각 방법과 기술은 다르다.


      라. 선종을 꽃피우게 한 지적 분위기


        7세기말부터 중국은 선불교를 발전시킬 수 있는 지적인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625년~755년의 130년간 당나라 왕조는 평화와 안정과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이시기에 중국은 문화, 종교, 예술 그리고 문학의 모든 면에서 오랫동안 자유로운 성장과 발전을 거듭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이 선종을 꽃피우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또 도가의 몇몇 측면이 선종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도 하였다.    


      ◇ 845년 법란 이후에도 가까스로 살아남아 송나라 때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고, 특히 한국과 일본에도 禪脈이 이어지게 되었다.


       


    (2) 北宗의 전래


      가. 법랑 (法朗)


        신라의 승려 법랑(法朗)은 언제 당나라에 가서 언제 귀국하였는지 기록이 없으나, 제4조 도신(道信:580~651)에게서 禪法을 배워왔고, 제자  神行에게 법을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나. 신행(神行: 704~779)


       신행은 법랑에게서 선법을 배웠고, 당에 건너가 神秀(~706) 의 제자인 보적(普寂)의 門人 志空으로부터 北宗 禪法을 배웠다. 그 후 신행은 귀국하여 지리산에서 교화하다가 혜공왕 15년(779년)에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 선법은 준범(遵範)을 거쳐 다시 혜은(惠隱)에 전하고 다시 도헌(道憲824~882)에 이르렀고 양부(楊孚)등 다수의 제자가 배출되었지만 그 法系는法孫代인 경양(競讓) 이르러 남종으로 들어가 결국 남종선에 의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4조 도신-신라 법랑- 신라 신행

      4조 도신-5조  홍인- 6조 신수(북종) - 화엄 보적-지공- 신라 신행

     

      ※ 북종(신수)-보적-지공  -신행-준범-혜은-도헌-양부(楊孚)

             (이상 중국)             (이하 신라-고려)

      ※ 남종-신강- 혜초- 도헌- 양부 - 경양(競讓-희양산문의 개조)

                    (이하 신라~)



      (2) 南宗의 전래


      북종은 전래된 흔적만 있을 뿐 그 자취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고, 오직 慧能(6조)의 南頓禪(남돈선)만이 크게 성하여 신라의 禪門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많은 신라승려가 당에 가서 선법을 배워 신라에 전했는데, 주로 남종선이 발달하여 지금까지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 남종 (혜능)의 유입 

         혜능  - 남악 회양 - 마조 도일 -  西堂 智藏  - 도의/홍척/혜철

                                        - 신감(神監)  - 혜소

                                        - 장경(章敬) 회휘(懷暉) - 현욱

                                        - 南泉 普願 - 도윤

                                        - 마속(痲俗) 보철(寶徹) - 무염


         혜능  - 청원 행사 - 석부 희천 - (석상제경) - 곡산 - 도현 -양부-경양

      

     가. 도의(道義)와 가지산파(迦智山派) 


      도의는 신라 37대 憲德王 5년(784)에 唐에 가서 馬祖 道一의 제자 西堂 智藏에게서 법을 얻어 귀국 후 남종선을 전했다. 당시 신라에는 선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를 비방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의는 설악산 진전사(陣田寺)에 은거하여 그 법을 제자 염거(廉居)에게 전하였다. 염거는 다시 그 법을 체징(體澄804~880)에게 법을 받은 뒤 중국유학 후 가지산에서 보림사(寶林寺)를 창건하고 도의의 종풍을 크게 떨쳤다.


     나. 홍척(洪陟)과 實相山


      홍척은 당에 가서 西堂 智藏에게서 법을 얻어 귀국 후 지리산 實相寺(남원 산내면)에서 선법을 크게 일으켜 많은 제자와 재가불자의 귀의를 받았다. 여러 산문 중에서 가장 앞섰으나, 그의 제자들이 행적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실상산문의 역사를 밝히기가 어렵다.

     

      다. 진감(眞鑑) 혜소(慧昭)


      혜소(慧昭 774~850)의 속성은 최씨이며, 당에 건너가 창주(滄洲)에서 馬祖의 문인 신감(神監) 만나 심인(心印)을 얻었다. 동방성인 또는 黑頭陀(얼굴이 검었다.)라 불리었고, 당에 있는 동안 道義와 道友가 되었다. 귀국 후 지리산 옥천사 (지금의 쌍계사)에서 교화를 하였다. 우리나라에 범패(梵唄)를 처음 전하였다.

     

     라. 慧哲(혜철 慧澈785~861)과 동리산(桐裡山)

       

      혜철은 속성은 박씨이며, 경주사람으로 일찍이 출가하여 처음에 부석사에서 화엄을 배웠다.  그 후 당에 건너가 西堂 智藏에게서 법을 얻고 와서 禪지를 펴는데 힘쓰다가 경문왕 원년에 입적하였다. 


     마. 현욱(玄昱787~868) 봉림산(鳳林山)


      현욱의 속성은 김씨이며, 일찍이 출가하여 당에 가서 馬祖의 문인 장경(章敬) 회휘(懷暉)에게 배워 법을 귀국 후 처음 南岳 實相寺에 안거하다가 혜목산 고달사에 옮겨 도화를 폈다. 그의 제자 진경 심희(審希855~923)가 봉림사(경남 창원시 상남면 봉림리)   


     바. 도윤(道允798~868)과 사자산문(獅子山門=지금의 영월)


      도윤의 속성은 박씨이며 漢州사람이다. 18세에 출가하여 수학하다가 唐에 건너가 마조 도일의 문하인 南泉 普願에게서 법을 얻고 귀국하여 풍악(楓岳)에 머물다가 쌍봉사(전남 능주)에 옮겨 종풍을 크게 떨쳤다. 그의 제자 징효(澄曉) 절중(折中) (826~900)이 사자산사(獅子山寺=지금의 영월)를 세워 수백 명의 제자를 배출하여 종풍을 드날렸다.


     사. 무염(無染800~888)과 성주산(聖住山)


      무염의 속성은 김씨이며, 일찍이 출가하여 설악산 五色石寺에서 法性에게서 得度하였다. 뒤에 당에 건너가 마조의 문인 마속(痲俗) 보철(寶徹)에게 법을 얻었고, 당에 있을 때 그를 동방보살이란 칭하였다. 문성왕 8년 귀국하여 감포(충남 보령군)烏合寺(聖住寺)에 종지를 펴고 법문을 크게 열었다.  

        

     아. 범일(梵日 815~894)과 도굴산(闍堀山)


      범일의 속성은 김씨이며, 15세에 출가하여 수학하다가 당에 건너가 염관(鹽官)제안(齊安)의 법을 얻고 귀국하여 堀山寺(강릉)를 세우고 여기서 종풍을 크게 떨쳤다.

      범일의 문하에는 朗圓, 開淸, 朗空, 행적(行寂) 등 10聖이 나왔다.


     ◇ 신라 말의 침체하던 불교 교단에 중국으로부터 禪法이 유입되어 처음에는 거부당하였으나, 고려조에 들어와 점차 발달하다가 무신 집권 시 그 위세가 최고조에 달하였다. 九山波 禪門도 이러한 역사와 더불어 확립된 것이다. 



      2. 九山禪門의 성립과 당시의 禪界


      신라 말기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선법은 고려에 들어와서 구산문으로 禪派를 형성하였다. 즉 신라 말에 남종선이 전래되어  가지산(迦智山), 實相山, 동리산(桐裡山) ,성주산(聖住山), 도굴산(闍堀山), 사자산(獅子山), 봉림산(鳳林山) 등 7대 선문이 일어났다.

      고려대에와서 진철대사(眞澈大師) 이엄(利嚴)이 수미산문(須彌山門)을 열고, 정진대사(靜眞大師) 경양(競讓)이 희양산문(曦陽山門)을 이룩함으로써, 비로소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 이엄(利嚴870~936)의 수미산문(須彌山門)


       이엄은 속성이 김씨이며, 12세에 가야갑사(가야갑사)에서 출가하고 수학후 진선왕 10년(896년)에 중국으로 건너가 운거(雲居) 도응(道膺)의 문하에서 6년 수행 후

    법을 받아 신라 효공왕 11년(896년) 귀국하였다. 고려 태조의 초청을 받고, 궁중에

    나아가 師事하였고, 태조 15년에 수미산(황해도 해주군 금산면 냉정리)에 廣照寺를 지어 교화를 크게 떨쳤다. 그의 제자로 處光, 道忍, 貞能, 慶崇 등 수백 명의 선사를 배출하였다.


      (2) 경양(競讓878~956)의 희양산문(曦陽山門)


      경양의 속성은 王씨이고 일찍이 출가하여 공주 南穴院 如解에게 득도하고, 뒤에 西穴院 楊孚(도헌의 법사法嗣)에게서 법을 물었다. 효공왕 4년(900년) 중국으로 건너가 谷山의 道緣(石霜의 적사嫡嗣)에게로 가서 법을 얻었다.


      후일 귀국하여 희양산(曦陽山경북 문경군 가은면 원북리)에 있는 鳳巖寺(경양의 法師인 양부의 스승 도헌이 창건) 이 봉암사는 도헌 이후 폐허가 된 것을 경양이 절을 새로 짓고 禪室을 다시 일으켰다. 그곳에서 도풍을 크게 떨쳤다. 여기서 그는 고려 태조, 혜종, 정종, 광종의 4대왕에 걸쳐 존경을 받았다.

      형초(逈超)등 많은 제자를 배출하여 그의 가풍을 떨침으로써 희양산문이 이루어졌다.


       ◇ 도헌비(道憲碑)

         ※ 北宗(신수)-보적-志空  -신행-준범-혜은-도헌-양부(楊孚)

                 (이상 중국)             (이하 신라-고려)


       ◇ 경양비(競讓碑)

         ※ 南宗-신감(神鑒)- 혜초(혜초)- 도헌- 양부 - 경양(競讓-희양산문의 개조)

                              (이하 신라~)

       

       ◇ 북종과 남종의 맥으로 모두 이은 경양이 중국의 남종 계열인 청원행사의

    법손인 곡산의 도연에게서 법을 이어 받아 결국 북종의 맥이 단절되고 말았다.




     ◇ 중국 남종선 2대 맥

          혜능 - 청원 행사 - 석두희천 - 석산제경-곡산 도연 -

               - 남악 회양 - 마조도일 - (서당 지장/신감/장경 회휘/남천 보원/마속)


     ◇ 중국 선종 5가


         혜능 - 남악 회양 - 마조도일   (1)임제종 - 양기종

                                                 - 황룡종 

                                        (2)위앙종


         혜능 - 청원 행사 - 석두희천   (3) 조동종

                                        (4) 법안종

                                        (5) 운문종


    (3) 고려 초기의 대표적 禪師


      가. 소백산 運禪師(855~937)


      운 선사는 속성은 김씨이며, 계림인으로 일찍이 출가하여 선융(善融)을 스승으로 수학한 뒤 설악산 진전사(陳田寺)에서 도의의 영탑을 참배하고 길이 제자가 될 것을 다짐했다.  그 뒤 舞師自悟하여 법화를 펴다가 소백산에서 입적하였다. 


      나. 윤다(允多 864~945)


      윤다는 속성이 朴씨이며 京師人이다. 8세에 출가하여 동리산 조사 혜철의 법제자인 如和尙에게서 공부하였다. 그후 禪旨에 도달하여 선풍을 크게 떨쳤다.


     다. 충담(忠湛 869~945)


      충담의 속성은 김씨이며, 어려서 부모를 잃고 長純禪師에 가서 출가하였다. 후일 중국에 가서 구법하였고, 귀국 후 태조의 왕사가 되었다. 30년간 법을 폈다.


      라. 경보(慶甫 868~948)

      경보의 속성은 김씨이며, 어려서 출가하여 18세에 月遊山 화엄사에서 具足戒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일정한 스승 없이 백계산의 도승, 성주산의 무염, 굴산사의 범일 등 당대 고승을 찾아서 현기(玄機)를 발하였고, 진성왕 6년(892)에는 중국에 건너가 무주(撫州) 소산(疎山)에서 동산(洞山)의 제자인 광인(匡仁)에게서 법을 얻었다. 귀국 후 법을 크게 폈다.



     마 찬유(璨幽 869~958)


      찬유는 속성이 김씨이며, 계림 河南人이다. 13세에 출가하여 公山 三朗寺에 가서

    鳳林山 조사 심희(審希)의 제자인 융제(融諦)에게 배우고자 하니, 융제는 그를 慧木山 眞鏡대사 審希에게로 가서 배우게 했다. 그 후 찬유는 중국에 건너가 投子山 大同(石頭 希遷의 법손 취미<翠微> 無學의 제자)에게서 심인을 얻어 삼랑사와 혜목산등에 거주하면서 법화를 크게 떨쳤다. 그는 태조, 혜종, 정종, 광종의 4대에 걸쳐 존신을 받았다.


      ◇ 이 밖에도 많은 선지식들이 초기의 禪門에서 배출되어 조계종이라는 종파 이름을 갖기 이전에 이미 선문을 융성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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