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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공든 탑이 무너지랴?
    행복의 문 - 법문, 좋은글/♣--생활법문 2011. 4. 17. 16:47

     

    공든 탑이 무너지랴?

     

     

    ◇ 불자님들

    청량한 바람이 부는 휴일 오후입니다.

    잠시 정토사 절 마당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는데

    전화 한통화가 왔습니다.

     

    “스님~ 지난 4월 6일 불교 방송(아름다운 초대)을 듣고

    용기를 내어 전화를 드립니다.

    스님! 저는 지금 종교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매우 힘들며 정신적 고통 심합니다. 저 이야기 좀 들어 주세요.”

    라는 어느 여성분의 사연이었습니다.

     

    ◇ 그 여성분은 결혼 후부터 절에 다니며, 열심히 기도를 한 덕에 남편의 사업도 잘되고 자신의 부업도 잘되며, 아이들도 공부를 잘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큰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 불자님은 오직 남편과 자식만 잘되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리하여 세 아이들이 명문대학을 나오고 유학도 가고 정말 다복한 가정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장남이 사귀는 여자가 골수 기독교인 인데 얼마나 집요하던지 장남이 교회에 다니더니 기독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다음 아들이 어머니에게 성심을 다하여 권하고 권하여 드디어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면서도 항상 마음이 편치 못하여 꿈속에서도 “너는 부처님을 배반하고 교회에 다니면 안 돼!”라는 환청이 들려왔습니다.

    그러다가 자궁암 수술을 받게 되고, 얼굴에 종기가 나서 수술을 하고 난 뒤부터 갑자기 우울증이 오며 정신적 고통이 심하게 되었습니다. 또 잘되던 남편사업도 어려워지고 자신의 부업도 그만 두게 되었는데 급기야는 남편이 급병으로 사망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여성분은 다시 절에 다니게 되었으며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들부부와 종교적으로 수많은 갈등을 겪다가 보니, 이제는 아들이 마귀인 어머니에게는 돈을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기막힌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며느리가 그러한 말을 하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작은 아들과 딸들까지도 기독교를 믿기 시작 하더니 어머니를 완전히 마귀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스님! 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지금 혼란스럽습니다. 종교가 도대체 무엇인지? 평화와 안정을 찾아야 할 종교 속에서 왜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저와 같은 노인 불자들이 기독교 며느리의 구박과 괄시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없겠습니까? 저는 절규합니다.”

     

    ◇ 위와 같이 한 가족 안에 다종교를 가진 분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위와 같은 분들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불교를 택하든 기독교를 택하든 그것은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종교보다 가족의 화합과 행복이 더 중요합니다.

     

    다음은 그 불자님과 스님의 대화입니다.

     

    “ 보살님~ 보살님께서 젊은 시절 절에 잘 다니고 기도를 열심히 한 결과 사업도 잘되고 아이들도 공부를 잘 하셨다고 했지요?”

    “ 네, 스님!”

     

    “ 그리고 뒷날 기독교 며느리가 들어와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 했지요?”

    “네, 스님! 그 며느리만 우리 집안에 들어오지 않았어도 그렇게 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며느리를 용서할 수 없어요.”

     

    “네, 보살님~ 보살님은 전생과 이생에 남에게 가슴에 상처를 준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보살님께서 큰 며느리 때문에 큰 상처를 받았고, 장남에게서도 큰 상처를 받았고 또 나보다 먼저 타계한 남편 때문에 상처를 받았고 이제 작은 아들과 딸아이 때문에 상처를 받았지요?”

    “네, 스님!”

     

    “보살님, 불교는 인과의 도리를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불설인과경에 의하면』이생에 내가 남으로부터 상처받은 일이 많은 것은 전생에 내가 그들에게 가슴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보살님이 이생에 큰며느리, 장남, 남편, 작은 아들, 딸에게 상처를 받은 것은 거꾸로 전생과 이생에 그들에게 가슴 아프게 한 업을 지었기에 그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보살님은 절에 다니면서 참회기도를 해보았습니까? 전생과 이생에 나로 인하여 가슴에 상처받은 이들에게 정말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참회기도를 해 보았는지요?”

    “스님, 그러한 기도를 못했습니다.”

     

    “보살님~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제일 먼저 며느리에 대한 참회 기도를 하십시오. 본래 고부간에는 전생에 원수지간이 만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100일간 지심으로 며느리가 사는 집을 향하여 밤에 자기 전에 108배 절을 하세요. 그리고 ‘며느리야~ 내가 전생과 이생에 너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준 것 정말 잘못했다. 잘못했다. 잘못했다. 용서해다오. 용서해다오.” 이렇게 지심으로 기도하여 눈물이 펑펑 쏟아지게 참회합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다가 보면 참 지혜가 마음속에서 솟아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모두 착하게 살고 악한 짓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그래서 며느리 생각에는 예수님만이 가장 훌륭한 분이라고 믿는 마음뿐이다. 그래서 나를 주님에게 인도하려고 한다. 그러면 며느리를 탓할 수 없지 않은가? 내 이제 교회에 나가서 예배도 드리고, 또 절에 가서 부처님께 공양도 올린다고 잘 못된 일이 아니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또 예수님의 사랑을 위해 교회도 가고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과 지혜를 배우러 절에 가는 것 또한 좋으리라. 며느리에게 ‘아가야~ 예수님 부처님도 다 착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분이다. 그래서 내가 교회에 가서 예수님 가르침을 배우고 믿고 할 테니, 너도 절에 와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도록 해라. 만일 그것이 싫다면 내가 절에 가는 것을 말리지 말아 라. 대신 내가 교회에도 나갈테니.” 이러한 멋진 생각이 떠오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 “보살님은 남편과 자식 잘 되는 기도를 죽기 살기로 한 결과 한 때는 그 기도 성취로 행복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위한 기도는 하나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위한 공덕을 쌓으려면 먼저 참회기도를 해야 합니다. 참회를 하면 자신을 맑히고, 가족을 맑히고, 사회를 맑히게 됩니다.

    그다음 남을 위해서 베풀어야 합니다. 즉 보시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참회기도와 보시를 동시에 해야 공덕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한쪽만 하면 공덕의 탑이 튼튼하지 못합니다. 참회기도와 보시의 튼튼한 공덕 탑을 쌓아두면 아무리 강한 업의 바람이 불어와도 아무 걱정 없습니다. 그 튼튼한 공덕 탑이 업풍을 막아주거나 방향을 바꾸게 해 줍니다.

     

    보살님~~ 멀리 전남 함평군에 계시는 모 할머님은 77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참회기도 100일을 하였는데 매일 참회기도 후 2천원씩 모아 회향을 하려고 하였는데 마침 스님의 방송을 듣고 몇 일 전 법 보시 써달라고 20만원을 보내왔답니다. 네 바로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진정한 회향입니다. 그 할머니는 튼튼한 공덕 탑을 쌓아 두셨습니다. 할아버지도 건강하시고 자식들하고 모두 평안하게 잘 지내고 계십니다.”

    “스님~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우매한 중생에게 어두운 먹구름을 싹 사라지게 하십니다. 저도 이제 진정한 참회기도를 하고 또 보시 공덕도 행하겠습니다.”

     

    ◇ 그렇습니다.

     

    불자님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일단 시작하면 그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즉 어떤 일을 시작 한 이상 그것은 ‘하고 싶은 일(욕구)’을 떠나

    ‘지금 해야 될 일(현재에 충실한 삶)’로 변합니다.

    결국 ‘지금 해야 될 일’의 순간에 집중하는 것으로(현재에 충실한 삶) 인해 욕구라는

    이름의 잡념은 사라져갑니다.

     

    위 사례에서 첫 번째 선택에서

    기왕 불교를 믿고 싶어서(욕구)

    불교를 믿고 실천해 왔다면 계속 한길을 갔어야 합니다.

    그렇게 못한 것이 고통이 생긴 원인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말고

     오직 현재 삶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선택에서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면(욕구)

    기독교를 믿고 실천해 왔다면 계속 한길을 갔어야 합니다.

    그렇게 못한 것이 또 다른 고통이 생긴 원인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선택에서

    불교를 다시 믿게 되었다면(욕구)

    두 번 다시 흔들리지 마시고 참회기도와 보시의 공덕을 쌓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머지않아 마음의 자유를 얻어

    교회에 가서도 성경의 말씀이 부처님의 마음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며느리에 미소 짓고, 아들과 손자와도 잘 지내며

    여유롭게 교회도 다니며, 때로는 산사를 방문하여

    맑은 산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유유자적 하시게 되면

     

    그 언젠가

    신과 인간 구속에서 모두 벗어나셨던

    부처님의 마음을 아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집착을 벗어난 마음으로 바라보면

    교회에서도 부처님의 법음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나 집착하는 마음을 벗어나지 못하면

    절에 있으면서도 지옥의 고통을 느낄 뿐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에 이르기를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으로 짓는다.”라고 하셨습니다.

     

    행복도 불행도 다 내 마음으로 짓고

    천당도 지옥도 다 내 마음으로 짓습니다.

     

    내가 남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것은

    남 때문에 내가 피해를 입는다는 생각에 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로 인하여 전생과 이생에 상처를 받은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참회를 하면

    결국 내 마음에 맺혀 있던 죄스러운 마음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참회를 하고 나면 나의 죄스러운 마음이 다 사라지게 됩니다.

    내 마음이 죄스러운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 참회라는 것입니다.

     

    ◇ 불자님들~

    참회는 자신을 이익 되게 한 자리(自利)행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자신도 살리고 남도 살리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 행의 실천을 통하여 성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 행에다 이타행인 널리 베푸는 공덕인 보시(普施)행을 하여야 그 공덕이 완성이 됩니다.

     

    불자님들 옛말에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 『참회와 보시』는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리는 실천행입니다.

    이렇게 『참회와 보시』튼튼한 공덕의 탑을 쌓아 두면 아무리 지독한

    업의 바람이 불어와도 다 막아 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정토사(개운선원)

     

    정인(남광) 합장

    (2011년 4월 17일)

     

     

     

    날마다 좋은날『개운선원』

                                     자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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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개운선원
    글쓴이 : 正印 (남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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