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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진묵스님과 강증산의 발자취를 찾아서-모악산 금산사.행복의 문 - 법문, 좋은글/○--고승열전 2009. 5. 27. 20:19
김제 땅 모악산 아래에는 금산사가 있다. 1천 4백 여년이나 된 오래 된 사찰로서, 신라 진표율사가 창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금산사는 참으로 묘한 데가 있다. 절의 창건 유래도 범상치 않거니와, 진묵스님도 잠깐 머무시면서 여러가지 이적을 베푸셨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진묵스님은 원래 이름있는 큰 사찰에는 머무르지 않으시고 이름없고 초라한 절만 찾아 다니시면서 중창하신 일이 맣은데, 예외적으로 금산사에는 머무신 것이다. 깊은 뜻이 있으신 것이다.[본 블러그 진묵스님 이야기(6) 참조]
또한 선지자요 신인이신 강증산과 얽힌 이야기도 많고, 원불교 교조이신 원각성존 소태산 부처님도 대각 후 1919(기미)년 8월에 휴양 차 이곳 금산사에 잠시 머물면서 거처하시던 별채 문미(門楣)에 처음으로 일원상을 그렸다고 한다.
소태산과 관련된 자료는 대략 다음과 같다.
[원기 4년(1919) 법인 성사를 마치고 대종사는 김제 금산사에서 몇 개월 유숙하시게 되었다. 금산사는 당시 그들의 안목에서는 사교의 집합체였다. 그것은 강증산이 열반 시에‘내가 죽으면 금산사 육장불에 의지하여 미륵불로 출세하리라.’는 예언 때문이었다. 대종사는 이곳에서 짚신을 삼으면서 수양에 전념하시던 중, 강증산 교인 몇 사람과 친분을 맺으니 이들이 곧 김제 인연들이었다. 훗날 서중안(徐中安)에 의해 익산총부의 대지를 마련하게 된 기연이 여기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하루는 금산사 스님 한 사람이 느닷없이 마당 한가운데서 죽었다. 그런데 틀림없이 죽은 그 스님이, 대종사께서 이마를 만지시니 도로 살아난 것이다. 이런 기적이 일어나자 대종사는 김제 경찰서에 신고 되어 며칠 심문을 받은 적이 있다. 대종사는 이렇듯 수많은 억압과 제제를 받으셨으나, 조금도 그들을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바가 없이 흔연히 상대하였고 항상 심복으로 일본 순경들을 감화시켜 나갔다.(이상 일제하 교단수난사 중에서)]
강증산과 관련된 자료는 대략 다음 몇가지를 추려 볼 수 있다.
[제자가 대선생께 여쭙기를 "동토에 전해오는 말에 '지난 임진란 때에는 이로움이 소나무에 있다'라 하고, 가산지란(홍경래의 난) 때에는 '뜨거운 흙은 무거운 흙이니 흙을 따르는 자는 산다'하고, '개의 성품이 집에 있는 것이니 집에 있는 것이 이롭다'하고, 앞으로 닥칠 난리에는 '차가운 금은 떠있는 금이니 금을 따르는 자는 산다'하고, '소의 성품이 들판에 있는 것이니 밭에 있음이 이롭다'라 하야, 세상의 여론이 '차가운 금, 떠있는 금'은 '금산사 미륵불이 솥우에 서 있는 것'을 일컬음'이라 하고, '소의 성품이 들에 있는 것이니 밭에 있는 것이 이롭다'함은 '굳게 혼신을 다하여 수도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을 일컬음이라" 하나이다.
"그런데 금산 미륵전은 진표율사가 세운 것이요, 진표율사는 본시 만경의 말단 관리로서 하루는 잉어를 낚았는데, 그 잉어는 천상의 선녀로서 죄를 지어 인간세상에 고기로 태어난 것으로서 목숨을 살려주기를 애걸하여 살려주니, 그 선녀가 보은으로 진표의 처가 되어 십 년 동안 같이 살다가, 선녀의 죄가 풀림에 장차 하늘로 올라가려 할 새 아들 세 명을 부탁하거늘, 진표의 잘못으로 아들이 죽어 만경에 무덤을 만들어 놓고 진표가 자리를 옮기지 않고 슬퍼하던중, 선녀의 가르침을 받아 삭발하고 중이 되어 모악산 용안대로 들어가 천일기도를 하니, 진표의 발원은 '천여년이 흐른 뒤에 미륵존불이 출세하면 제자가 되어 용화세계에 선녀와 다시 인연을 맺는 것'이라, 먼길인 변산까지 일보일배하니, 그 지극한 정성이 미륵불을 움직여 미륵불이 굽어보며 찾아와 진표율사가 비장곡에서 도를 이루어, 처음 발원함에 미륵존불이 모악산과 회문산에 서계시는 데 큰 모습이 하늘을 가로 지르고, 두번째 발원에 미륵존불이 모악산 양기슭에 서계시는데 중간정도의 모습이 하늘 허공으로 솟아있고, 세번째 발원에 미륵존불이 금산사 연못가에 서계시는데 적은 모습이 지금의 금산사 솥 위에 서있는 부처의 모습이라.
진표율사가 행동을 극히 조심하고 장차 금강을 건너려 할 새 배가 없더니, '강에 여러 고기들이 가득 모여들어 스스로 다리를 만들었다'는 기이한 소문이 세상에 퍼져나가, 신라국왕이 진표율사를 국사로 맞이들이거늘, 진표율사가 국왕을 가르쳐 깨워주어, 국왕이 스스로 천여 년이 지난 뒤에 미륵존불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여 금은곡식과 비단을 수차례 몸소 희사하니, 진표율사가 연못에 사는 용을 변산으로 옮기고 숯으로 못을 메워 정성을 다하여 미륵전을 세우기에 힘쓰니, 굉장히 뛰어난 절의 도량이 지금의 삼층으로된 미륵전이요, 금도금한 입불인 미륵존불이 천하에서 최고가 되어, 토정이 '금부처가 능히 말을 한다'라는 비결을 남겨, 세상에서 금부처가 말을 하기를 기다리고 바라는 사람들이 많사옵나이다."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나에 관한 말이 더 없어냐. 진표는 나와 큰 인연이 있느니라."
대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금산 미륵불에 기도를 하여 소원을 이루었는데, 지금 대한제국의 민비는 천산만불에게 기도를 했으나 오직 금산 미륵불에게는 기도를 하지 않았느니라."]
[대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고부 정읍 태인 부안 김제와 전주 순창 익산 옥구 함열로 도성을 삼나니, 문신과 무신이 일을 하는 도성이 한양의 일곱배가 되어 거주하기에 족할 것이니라. 부서 한 장이면 산 하나를 가히 옮길 수 있나니, 내 세상에는 서해를 간척하게 될 것이니라." 또 이르시기를 "내가 거하는 대중화(大中華) 대시국(大時國) 수도의 북문이 전주에 세워지게 될 것이니라. 때가 되면 금산사는 사람으로 산을 이루고 사람으로 바다를 이룰 것이니라."]
[제자가 대선생께 여쭙기를 "선천에 천하 여러나라의 인종이 각각 피부색이 다르고, 습속이 각기 특수하니 무슨 까닭이나이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선천은 지운이 통일되어 있지 않았느니라. 이제 네 곳의 명당을 큰 근본으로 하야 천하의 산하대운을 통일하여 화합하면 그런 차이가 없어지게 되느니라." 제자가 고하기를 "사명당의 대운에 대해 듣기를 원하옵나이다." 대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순창에 회문산 오선위기가 있으니 그 하나요, 태인에 배례전 군신봉조가 있으니 그 하나요, 장성에 손룡 선녀직금이 있으니 그 하나요, 무안에 승달산 호승예불이 있으니 그 하나니라."
제자가 여쭙기를 "천하의 산하대운이 통일되면 어느 산이 중심이 되나이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전주 모악산이 천하의 어머니산이니, 모악산이 산하대운의 가장 큰 중심이 되느니라." 제자가 여쭙기를 "천하의 산에 어머니산이 있으면 또한 아버지 산도 있지 아니하오리까." 대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순창 회문산이 천하의 아버지산이니, 내 세상에는 모악산과 회문산이 만산의 부모산이 되느니라." ]
이상과 같은 대략의 자료를 보더라도 금산사는 몇 분의 부처님이 이미 다녀 가셨고, 소태산 부처님께서 "드물게 있는 선지자요 신인"[대종경 변의품 31]이라고 인증하신 강증산과도 관련이 있는 비범한 성지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소태산 부처님께서는 "앞으로 우리 회상이 세상에 드러난 뒤에는 수운 선생과 함께 길이 받들고 기념하게 되리라."고 하시었다. 의미 깊은 말씀을 잘 받들어야 할 것이다.
강증산은 소태산께서 탄생하신 1891년 음3월 27일 보다 20여년 전인 1871년(신유) 음9월 19일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에서 탄생하시었고, 소태산이 대각을 하신 1916년(병진) 음3월 26일[양력으로 4월 28일] 7년 전인 1909년(기유) 음6월 24일에 화천하였다.
금산사 입구의 후백제 유적.
모악산 금산사 일주문.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미륵전이다.
오층석탑.
방등계단 사리탑
대장전
대장전 앞의 석등.
부도전에 있는 혜덕왕사 진응탑비.
금산사 부도전의 부도들.
일주문을 지나서 처음 만나는 금강문.
금산사 입구에는 강증산의 말씀을 따르는 분들이 일종의 포교당을 마련하고 말씀을 전파하며 수행하는 곳이 있다.
윗그림은 금산사 미륵전 내부의 모습을 설명한 그림이다.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각 종교가 성립한 배경을 설명한 그림.
동곡(구릿골)에 있는 강증산의 동곡양방.
동곡약방에 세워진 취지석 뒷면(위)과 앞면(아래).
강증산이 공사를 하실 때 사용했던 반석이 동곡약방 내에 비치되어 있다.
금평저수지와 동곡(구릿골)
금평저수지를 바라보는 곳에 증산법종교가 자리하고 있다.
증산법종교는 강증산의 무남독녀인 강순임에 의해 창교되었다.
삼청전.
삼청전 내부.
영대
화은당
강증산의 진영
진영 좌우측에는 연꽃 모양의 장식이 있다.
태평전
구룡사
만고종각
출처 : 미륵산 心地院글쓴이 : 들풀 원글보기메모 :'행복의 문 - 법문, 좋은글 > ○--고승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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