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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앓으니 보살이 앓는다.”행복의 문 - 법문, 좋은글/♣--남광 엣세이 2009. 1. 11. 11:39
“중생이 앓으니 보살이 앓는다.”
회원여러분~
기축 년 한해는 어느 때보다 국내외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예상될 것 전망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는 물론 이명박 대통령도 공식적인 여러 석상에서도 경제적 위기를 여러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위기에는 국민들이 합심을 해야 그 난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큰 국란이 있을 때 위로부터는 임금에서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민족으로 똘똘 뭉쳐 그 위기를 극복한 적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한 민족의 후예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를 보면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등을 지고 있고, 남한 내에서는 여당, 야당, 지역 당으로 갈라져 서로의 이기심에 빠져 아사직전에 놓은 국민들의 경제위기를 강 건너 불보 듯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민족혼은 어디로 가고 온갖 사상과 온갖 종교가 제마다 옳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으니, 도대체 대한 민국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많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일부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미국의 한주로 편입하는 것이 좋겠다는 사람도 있는 실정입니다. 가정도 분열되고, 노사도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습니다.
● 이러한 현상은 결국 서구의 퇴폐적이며,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마음이 병든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국민적, 정신적 분열을 통합할 수 있는 원리와 사상에 대하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이 해답은 이미 1천 육백년 전 원효 대성사가 이미 말씀하신 것입니다.
원효대사가 계실 당시 우리 민족은 고구려, 신라, 백제로 3국이 나누어져 서로
서로를 죽이는 극한 대치상태에 있었습니다. 또 사상도 100여 사상이 서로 혼돈된 상태로 저마다 옳다고 주장하였으니, 어쩌면 오늘날 보다 더 큰 혼란에 직면
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열과 어지러움을 통합하려는 방법을 제시해준 분이 바로 원효대사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원효스님의 생애와 그가 제시한 회통의 사상에 대하여 공부하도록 합니다.
◇ 원효는 어떤 사람인가?
원효는 신라 육두품 출신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조실부모하고 조부의 손에서 자라났다. 후에 흥륜사 법장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는데 그의 집을 절로 만들었다. 출가 후 원효는 많은 스승을 두었는데, 영취산 반고사 낭지(朗智)법사, 전주 고대산 보덕화상, 대안(大安)대사 등이며, 그는 당대에 한반도에 들어와 있던 거의 모든 불교의 종파의 진수를 터득하였다. 즉 천태, 법화, 화엄, 율학, 열반종 등 경서에 통달하였다.
● 그러므로 원효는 한 스승을 고집하지 않고 크나큰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그 모든 주의 주장이나 사상을 다 담았던 것이었다.
원효는 오천년의 한국 역사상 가장 빼어난 사상가였다. 그의 학문적 화두는 다양한 주장을 회통하고 화해시키는 것인데, 일심을 통해 모든 것을 회통하였던 것이었다.
원효는 신라당시의 1백여 명의 대사상가들[百家]을 총섭한 그 정점에 자리하였다. 이러한 바탕 하에 그는 금강삼매경론(소) 등 수많은 저술을 완성 하였다.
그는 사문(沙門) 원효를 벗어나, 수행의 높은 단계를 이미 완성하고 무아(無我) 보살행을 몸소 펼쳤던 것이었고, 중생을 풍요롭게 이익 되게 하기 위하여, 온 몸으로 자비행을 실천한 무소유(無所有)와 무애(無碍)의 자유인 이었다.
<참고 : 원효탐색 고 영섭 지음 연기사 >
◇ 원효의 생애
한국불교 사상 가장 걸출한 스님 중의 한 분으로 꼽히는 원효대사는 서기617년 신라 진평왕 39년에 지금의 경북시 자인면 불지촌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설(薛)이요, 속명은 서당(誓幢)이다. 잉피공(仍皮公)의 손자 담내내말(談渿乃末)의 아들로 압량군(장산) 남불지촌의 북쪽 율곡 사라수 아래서 태어났다. 원효를 놓고 어머니는 몇 일후 죽고, 아버지도 원효가 3살 때 낭비성 전투에서 죽고 조부에 의해 길러졌다. 원효는 청소년기에 문무를 겸한 화랑도로써 많은 전투에 참여했고, 황금서당이란 화랑의 우두머리 직책을 맡았다.
원효의 출생과 성장과정이 부처님과 많이 닮은 점이 있었고, 결국 원효도 부처님처럼 출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흥륜사에서 법장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고, 영취산 반고사의 낭지(朗智)에게 <법화경>공부를 하였다. 그 후 낭지법사의 명으로 의상과 함께 고구려에서 백제에 와 있던 보덕화상을 찾아가 <열반경>과 <유마경>을 배웠다.
34세 되던 650년 경전 공부를 위해 당나라로 갔으나 요동(遼東)에서 고구려의 순라군에게 붙잡혀 실패했다. 그 후 661년 의상과 함께 2차 유학을 시도 했으나, 무덤 속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신 후 깨달음을 얻어 서라벌로 되돌아 왔다. 이때부터 원효스님은 저술에 매진하여 <열반경소><법화경종요><능가경종요><유마경소>등 무려 240여 권의 책을 남겼다.
태종무열왕의 공주인 요석(瑤石)이 스님을 흠모한 끝에 훗날 신라 十賢의
한 사람인 설총(薛聰)을 두었다. 이후 스님은 속복차림으로 스스로 복성(卜姓)거사라 일컫고 무애의 보살행으로 대중교화에 앞장섰으며, <금강삼매경론소>를 짓는 등 저술에 몰두하였다.
686년 (70세) 음력 3월 30일 혈사(穴寺)에서 입적하였다.
서울 효창 공원에 원효동상이 건립되었고, 원효대교가 세워졌으며, 국제 원효학회가 발족되는 등 스님의 뛰어나 업적을 기리고 사상을 연구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주17) <고승열전 원효대사 /윤 청광 지음/우리출판사 서문 참조>
◇ 원효의 사상
원효의 사상은 한마디로 일심(一心)이다. 또한 화회(和會)며 무애(無碍)이다. 원효는 다양한 주장인 이쟁(異爭)을 화쟁(和諍)하고 회통(會通)하여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歸一心願) 중생들을 풍요롭고 이익 되게 하였다.(饒益요익衆生)
한마음의 근원[일심지원 一心之源]과 불심의 바다[삼공지해 三空之海]를 통해 깨끗함[진 眞]과 더러움[곡 俗]이 둘이라는 는 것을 설파 했다. 또 더러움과 깨끗함에 분별이 없으면서도 어느 한편만을 고집하지 않았다.[無二異不守一]
또한 그는 대중들의 행복을 위해 무애(無碍)행을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었다.
◇ 원효의 회통사상(會通佛敎)
원효는 하나의 주의주장에 집착하지 않았다. 원효는 일심(一心)이라는 바다와 같은 넉넉한 마음, 우리 모두가 한 뿌리라는 대자 대비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불교의 각 종파나 다양한 주의 주장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항상 긍정하지도 항상 부정하지도 않았다.
● 부정과 긍정의 다양한 주장[異諍]을 동의하지도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으면서 받아들이는 화법[和會] 법이 화쟁법(和諍)法이다.
원효는 일심(一心)이야 말로 갈라진 모든 물결들의 원시지(始原地)이며, 의지처(依支處)임을 강조했다. 삼국이 국토팽창정책에 의거해 주장하는 다양한 정략들조차도 결국 “삼한통일(三韓一統)”이라는 기치아래 묶었고, 진제의 입장도 속제의 입장으로 환원하였고, 진여(眞如)문을 생명(生滅)문에 포함시켰다. 또한 인민의 삶이나 귀족의 삶을 중생심(衆生心)으로 묶어 세웠다.
결국 중생심이 곧 일심(一心)이며, 이 일심(一心)이 대승(大乘)의 마음이라고 주장하였다.
원효는 금강삼매경론소에서 “ 여래가 설한 바 일체의 교법은 일각(一覺)의 맛에 들지 않음이 없다. 일체 중생이 본래 일각이었지만 다만 무명으로 말미암아 꿈 따라 유전하다가 모두 여래의 일미(一味)의 말씀에 따라 일심의 원천으로 마침내 돌아오지 않는 자가 없음을 밝히고자 한다.”고 주장하였다.
<참조 : 원효탐색 /고 영섭 지음/연기사>
불교의 목적은 뭇 중생들로 하여금 깨달음에 들게 하는 것이고, 그 깨달음이 “ 한결같은 맛(一味)이며 길이다. 갈라진 온갖 지류도 끝내는 바다에 이르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원효는 모든 불교 종파 대립은 중생의 마음으로 어느 일면 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므로, 그 근원을 찾아 일심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다 통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회통불교(會通佛敎)이다.
◇ 오늘날의 분열상 어떻게 회통할 것인가?
원효의 화쟁이론은 주로 불교사상에 있어서 주로 대립되는 관점을 융합하는데 역점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원효는 스스로 어느 한 종파나 사상에 고집하지 않고 화엄, 법화, 열반, 정토, 여래장 등의 다양한 경전을 연구했으며 그 모든 가르침을 통합하는 차원에서 이해했다.
이와 같이 대립되는 모든 것을 해결하는 융화의 원리는 일심(一心)이다. 일체 만유가 우주근원의 한 뿌리로 나왔으므로, 크게 보면 하나라는 것이다. 여기서 대자 대비한 마음이 나온다. 여러 갈래로 시작된 강물이 결국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된다.
● 그러므로 여당 야당이 결국 지지 국민의 대표로 나온 것이나, 우리 국민은
또 대한민국의 한 국민이다. 한 민족의 후예이며, 한 뿌리이다. 새끼손가락이 상처가 나도 아프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큰마음으로 서로가 하나 됨을 인식한다면 지금과 같은 극도의 분열이 없다. 위기에 처한 국민의 경제 살리기에 어찌
여야가 따로 있을 것인가?
● 이렇게 국내외 경기가 위기 상황 속에서도 노사가 내 밥그릇, 너 밥그릇 따지면 결국 다 파멸하고 만다. 노사는 하나이다. 회사 없는 노조가 무슨 소용이며, 종업은 없는 회사가 어찌 일을 하겠는가? 노사가 한 몸이 되지 않고는 결국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
● 남북문제도 이와 같다. 우리는 한 핏줄 한 형제라는 한마음 의식을 가질 때
결국 서로가 신뢰하고 진정한 남북협력의 시대를 잘 열어 갈 것이다.
● 또한 우리 가정문제도 이와 같다. 어려움에 직면한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의식을 가질 때 그 가족을 살아날 수 있다.
서로가 한 몸이다. 부부가 일심동체로 움직일 때 그 가족은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 “중생이 앓으니 보살이 앓는다.”
원효는 어느 종파나 사상에 한정하지 않고 화엄, 법화, 영반, 정토, 여래장 등 다양한 경전을 연구하고 통달하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경의 통달도 삼국통일 전쟁시 엄청난 희생을 강요당하고 끝내 죽어가야만 하는 백성들의 원성과 원한을 달랠 수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꼈다. 그래서 묵향 가득한 분황사를 박차고 나와 민중 속으로 뛰어 들었다. 무애(無碍)박응 두드리고, 백성들과 함께 나무아미타불을 노래하며 대자 대비한 부처님의 법을 전하였다.
●“중생이 앓으니 보살이 앓는다.”라는 유마거사의 명제가 “중생의 병이 다 나을 때 비로소 보살의 병도 다 낫는다.“는 화두가 원효성사(聖師)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대비심에서 비롯한 유마보살의 인간이해는 바로 원효보살의 인간이해이기도 하였다. 원효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큰마음, 넉넉한 마음, 모든 것의 근거인 일심(인간의 보편성)을 발견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었고, 이를 철저하게 실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때의 원효의 심정을 잘 그리고 있는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은 원효의 삶과 사상을 감동적으로 묘사한 詩人 고영섭씨의 詩이다.
<참고 : 원효탐색 /고 영섭 지음/연기사>
◇ 시정에서 부르는 원효의 노래
고 영 섭
햇살 드높은 서라벌의 하늘 크게 저으리
무애박이 깨지도록, 어깨죽지 빠지도록
서울 네거리를 춤추며 노래하리
해진 삼태기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을 담아 넣고
춤사위 한자락 크게 두르며
시정 속으로 들어가리
들풀들이 아프면 나도 아프리
모든 것에 걸림 없는 한 사람이
한 길로 삶 죽음을 벗어났느니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준다면
하늘 떠받친 기둥을 끊으리
그날 요석다리 아래에 떨어져
개천 시궁창 안의 진한 악취와
양편 둑 위에 질펀히 자라나는
풋풋한 들꽃들의 땀냄새를 맡았네.
짙은 향내음과 촛농에 코막혔던 지난날
두르리는 목탁소리에 귀먹었던 날
서걱이는 들풀들의 가는 목들미를
매운 바람이 움켜쥐고 쓰러뜨릴 때도 나는
들꽃 피어난 서라벌 들판에
질긴 잔뿌리 되어 내리지 못하고
먹내음 그득한 서실 안에서
말씀만을 풀이하고 앉아 있었네.
마땅히 어디서 누구를 건져야 하리
천민촌 북천을 뛰쳐나가는 내게
뒷통수를 찌르듯 던진 한 마디 대안스님 말씀과
저자거리의 불목한이로 남아
난지도 쓰레기장에 모여드는
잠 못 드는 영혼들을 데워준 나를
잘 가게 하며 알아보신
뒷방 늙은이 우리 방울스님 말씀을
저자 속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네.
모두 다 버려야만 보이는 들풀들을
두 눈으로 꿰뚫어 보면서
부질없이 질러버린
종요[宗要]와 논소[論疏]의 문빗장을 열어 젖히고
두드리는 박소리와 휘젓는 춤사위로
뭇 삶들의 바다 속에서
자맥질하기로 했네.
◇ 오늘날 이 땅에는 삼국시대보다 더 분열되고 대립된 수많은 이념과 사상이 있어 우리 모두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남북대립, 동서지역대립, 빈부대립, 종교대립, 정치대립은 물론 지역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 개인이기주의가 극에 달하고 있다. 현재는 그 도를 넘어서 병이 들었다.
이 병을 치유하기 위한 방법은 원효성사(聖師)의 “화장회통(和諍會通)” 밖에 없다. 즉 우리민족과 인류는 결국 한 뿌리에서 시작되었다는 큰 마음과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다양한 주의와 주장을 받아들이되, 결코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틀로 판단하여, 무조건 인정하거나 무조건 비판하지 말아야한다.
항상 보편적인 진리인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대립하지 말고
대승적 차원에서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수용하되, 부분과 전체도 결국 한 마음에서 나왔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한마음에서는 부분과 전체가 하나이므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 한 것이다.
이와 같이 一心의 관점에서 전체는 부분을 생각하고, 부분은 전체를 생각하고 위할 줄 알아야한다. 또한 각 부분들도 서로 쟁투하지 말고 한마음으로 화해하고 서로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 오늘날 우리는 위와 같이 수많은 분열과 대립을
“화쟁회통(和諍會通)” 할 새로운 원효를 찾고 있다.
우리 불교도는 이제 이 시대의 원효 보살로 다시 태어나야한다.
그 보살들은 온갖 극심한 분열로 병들어가는 이 나라를 구해내야
할 사명이 있다.
우리 불자들은 이 원효보살의 길을 반드시 실천하여 이 땅을
복된 불국토인 부처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 불국토(佛國土)는 모두가 오손도손 행복하게 잘사는 세상인 것이다.
불기 2552년 무자년 12월 16일
사문(沙門) 남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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