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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금을 울린 가족 이야기~행복의 문 - 법문, 좋은글/♣--남광 엣세이 2008. 4. 19. 13:21
◇ 가족이야기~
어제는 D대 총장을 지내신 어느 불자님 가족들이 절에 오셨습니다.
1년에 4번 가족들 제사를 오봉정사에서 지내고 있는데, 어제가 그의 형님과 형수님의 기일 제사였습니다. 이 가족들은 항상 단란한 모습으로 우애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 기도하거나 제사를 지내는 모습이 참으로 지극합니다. 그 가족들이 왔다 가면 한동안 멍하니 상념에 잠기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족을 주제로 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많은 사람들이 자심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남보다 못하게 대합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범하고 있는 잘 못입니다. 우리는 자신만 생각하느라 가족을 아프게 하고, 그로 인해 결국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 다음은 H라는 젊은이의 편지의 상담내용 일부입니다.
벌써 4월도 하순에 접어드네요. 요즘 일교차가 심한데, 남광스님 건강은 괜찮으세요?
저는 마음을 비우고자 수업이며 다 빼먹고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솔직히...그간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모든 걸 다 제가 감당하고 가야하고...
그냥 주변에 친구들은 하나 같이 부모님과 형제들과 짐을 나눠서 편하게 지고 가는데
저는 정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기나긴 시간을 살아 와서...
참 제 인생, 제 자신이 너무 서럽고 힘들었습니다.
어딜 가나 제 친구들...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이 부모님 어디 아프시니?
혹은 부모님 안계시냐, 나이가 많으시냐 그런 말을 묻곤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 삶을 이해를 못하더라구요.
제 나이 20대에, 저는 40대의 삶을 살아 왔고
그래서 제 마음이 속으로 곯아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저는 부모님께 화살이 돌아가는 것이 싫어서... 제가 다 감당하고 커버하고...
그냥 그렇게 살았던 것이 제 속내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냥 그렇게 묻어 살았건만, 이제는 저한테 누군가가 해주는
위안 위로조차도 전혀 도움이 되질 않더라구요.
그래서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경주에서 금오산(경주남산)에 산사에서
그리고 노스탤지어를 불러들이는 들판에 서서 그냥 하염없이
제 마음을 비우려고 애쓰고 또 괴로움을 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사실, 엄마와 지난 주말에 크게 다투었습니다.
어찌보면 사소한 것이었는데...
무언가가 저를 산란하게 하는 것인지...
그냥 크게 다투게 되어, 결국 제가 엄마께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경주에서 저는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제가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거란 사실 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모든 건 다 제가 안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었고...그건 다 제 전생에 과업으로
하여금 현재 이런 마음의 고통을 얻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냥 잘 풀릴 수도 있고, 남들은 쉽게 잘 풀린 것도,
저는 꼬이고 꼬인 것이 다 전생의 제 과업이기에
또 그렇게 체념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 당장 군대를 가는 것이 아니라 KATUSA 접수가 9월이나 10월에 있고 11월에
발표가 되면 내년 8월이나 9월 정도에 입대를 하게 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역시 그길 밖에 없어서 노력은 하고 있는데, 그것도 운이 따라 주어야 하는 것이기에 그냥 마음을 비우고 내년 상반기 중에 군에 입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짊어져야할...이 나라에 살면서 짊어 져야할 마지막 숙제...충분히 빗겨 갈 수도 있었지만 제가 짊어 져야할 마지막 짐이라 생각하고 그냥 마음을 비우기로 했습니다.
모든 게 다 제 전생의 업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정말 저한테 마가 끼질 않았으면 좋겠는데, 저한테는 좋은 일이 있는가보다 하다가도 쉴 새 없이 마가 끼니...참 제 삶이 너무 고단하고...그냥 어서 몇 해가 지나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그 소망 뿐입니다.
◇ 위 편지에서 H라는 젊은이의 부모가 사업실패로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 그는 자신의 학비는 물론 집안의 모든 살림에 이르기 까지 사실상 가장의 역할을 수년간 하고 있으며
그동안 가족 간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위 젊은이는 “20대이면서 40대의 삶을 살아왔고 그래서 마음이 속으로 곪아 만신창이가
되었다.“라고 한 말에서 얼마나 정신적 고통을 많이 받아 왔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 만일 위 젊은이 집안의 경우, 비록 경제적으로 가난하지만 가족 간 서로서로 위하는 마음이 많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상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 가족의 어머님이 구체적으로 H라는 젊은이에게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를 일
이지만 모자지간에 다툼이 있다는 것은 서로서로 자신의 입장이 옳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위 어머니는 H라는 젊은이의 세심한 마음의 갈등을 읽었더라면 더욱 말조심을 했을 것입니다. 또 반대로 H라는 젊은이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말을 너무 자주 쉽게 그의 어머니에게 했다면,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어머니도 인내에 한계가 있을 터입니다.
◇ 그러므로 위 가족의 개운의 해법은~
사실상 가장으로 모든 짐을 짊어진 H라는 젊은이에게 부모님들은 진정으로 아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따뜻한 말과 격려의 말을 잊지 말아야하겠습니다. 또 H라는 젊은이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짊어진 어려움을 부모들에게 반복적으로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더욱 큰 사람이 됩니다.
● 그러므로 가족 모두 서로 소중히 여기고 사랑으로 대하며, 자신의 슬픔도 가슴깊이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이 가족이고, 나의 기쁨을 가슴 깊이 마음으로 기뻐해 줄 사람도 가족입니다.
◇ 가족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가 무의미합니다.
학교 다닐 때 보면 자주 지각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학교 근처에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까우니 오히려 나태한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도 너무나도 가깝고 너무나도 익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소홀히 대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는 많은 사람들이 범하고 있는 잘 못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감정과 자신만을 생각하느라 가족을 아프게 하고, 그로 인해 나중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 불치에 병에 걸려 누워있는 아내를 위해 자신도 장애의 몸으로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서도 조금도 아내를 원망하지 않는 어느 장애인의 일기를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진 적이 있습니다.
◇ 오늘 아침 예불을 하기위해 법당 앞 계단을 오르면서~
“여보, 당신 오래오래 살아요. 난 당신이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오.”라는 말이 내 귓가에 맴맴 돌았습니다.
그리고 단란하게 느껴지던 D대 총장님 가족과 H라는 젊은이와 그 가족 그리고 개운선원 회원가족 모두 더욱 행복하시기를 관세음보살님 전에 지심으로 축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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