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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의 이해불교 공부/불교의 이해 (남광 리포트) 2007. 12. 5. 13:00
◇ 목차
1. 서언
(1) 밀교의 기원
가. 밀교의 정의 나. 밀교의 태동과 원인
다. 밀교의 가르침 라. 시대흐름에 따른 밀교
(2) 밀교의 시대적 구분
가. 초기밀교 나. 중기밀교 다. 후기밀교
2. 본론
(1) 인도밀교
가. 인도밀교의 기원 / 나. 힌두교와 밀교/ 다. 인도 밀교성립의 사상적 배경
라. 시대별 밀교경전 / 마. 인도밀교의 전파
(2) 중국밀교
가. 형성기 / 나. 성장기의 밀교 고승 / 다. 쇠퇴기
(3) 티벳밀교
가. 전전기 / 나. 전후기 / 다. 티벳 불교 중흥기/ 라. 티벳 불교의 종파
★ (4) 한국밀교
가. 밀교의 도입 / 나. 구법 밀교 고승/ 다. 밀교의 영향
(5) 일본밀교
가. 도입기 / 나. 일본밀교의 고승 / 다. 일본밀교 특성
3. 맺는말
4. 참고문헌
1. 서언
(1) 밀교의 기원
가. 밀교의 정의
1) 밀교(密敎)
밀교는 秘密佛敎를 줄여 부른 말이며, 身密, 語蜜, 心密의 3밀로 요약된다.
○身密은 붓다의 신체적 비밀로 32상 80종호를 비롯해 형태,색깔, 장신구, 수인 등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 붓다가 머무는 불국토를 말하기도 한다.
○語蜜은 붓다의 언어적 비밀로 진언, 다라니, 種子등을 말한다.
○心密은 붓다의 마음의 비밀로 붓다의 지혜와 삼매의 세계, 중생을 구호하려는 자비심 등을 가리킨다.
2) 현교와 밀교
현교란 전문적인 밀교가 성립하기 이전의 모든 불교영역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중생의 근기에 따라 부처님이 설한 교를 현교(顯敎)라 한다.
밀교란 교설로 표현되지 아니하는 다라니, 진언, 밀언, 만다라, 의식 등 三密의 형태를 통해 직접 법신(佛性)을 깨우치는 敎를 말한다.
3) 밀교는 붓다의 지혜와 자비를 포함한 내면적 세계와 궁극적 세계를 다루고 있으므로 대승불교의 가장 발달된 형태로 볼 수 있다.
불공은 [총석다라니 의찬]에서 “밀교는 빠르고 쉽게, 안락하게 성불할 수 있는 속질지도(速疾之道)라”고 하였다.
나. 밀교의 태동과 원인
밀교가 나타난 것은 인도사회의 시대적 변화에 그 원인이 있다. 서민대중이 복잡한 교리나 사변적 철학보다 단순하고 실천하기 쉬운 종교를 택하게 되어 종래의 바라문교가 힌두교로 바뀌게 되었고, 그 교세가 인도 전역에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에 위기의식을 가진 대승불교가 힌두교의 장점을 과감히 도입하게 된 것이다.
밀교는 인도 고대 종교의 영향을 받아 대승불교에 도입된 것이다. 즉 고대 바라문에서 행해지던 제례나 외부적 주술, 천문과 점성 등의 종교행위가 기원 전후로 대승불교가 성립하면서 대중교화의 한 방편으로 도입된 것이다. 특히 기원후 3~4세기 경 대승경전은 크게 密敎化 하여 주술과 다라니를 중심으로 전문화 되었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無常)”는 불타의 말씀이 불교 전법과 교화에도 예외 없이 적용됨을 알 수 있다.
다. 밀교의 가르침
밀교의 교리에 따르면 인간은 無明에 싸여 있으나, 아직도 佛性이라고 하는 신성한 불씨를 그 안에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무명에서 벗어나려면 비밀스러운 淨化儀式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정화의식은 고대 인도신화로부터 가지고 온 것이다. 불교의 밀교경전과 힌두교의 밀교경전은 본래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다.
다만, 불교의 밀교에서는 “신이나 악마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우리들의 환상의 산물일 뿐”이라는 大乘의 空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밀교에서의 비밀스러운 정화의식 과정은 진언, 수인(手印), 관정(灌頂)을 들 수 있다. 밀교에서 가장 유명한 진언은 “옴 마니 파드메 훔”(om manipadme hum/ 오, 연꽃속의 보석이여!)이다. 단지 이 주문을 외우기만해도 윤회의 고리를 끊고 극락으로 가거나 해탈하기에 충분하다.
●중국불교 / 민족사 / k.s.케네쓰 첸/ 박해당 옮김/ P 357~369 (密宗)
라. 시대흐름에 따른 밀교
밀교의 발전은 그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서 발전되어 갔으며, 초기 진언과 주술적 現世 求福的 밀교에서 顯密을 동시에 중시하는 밀교로 또 則身成佛을 주로 하는 밀교로 거듭 변천해 왔다.
밀교는 그 동안 근본교리인 緣起와 空의 中道를 근간으로 하여 오랜 시대 여러 민족의 잡다한 문화요소를 흡수 활동하여 大乘佛敎로 발전하면서, 드디어 <密敎>라는 열매를 맺었다. ●금강대승밀교총설/ 정우서적/ 정태혁 / 2003.05.15
이와 같이 불교를 연구하려면 대승불교를 알아야하고, 그 열매인 밀교를 반드시 탐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산물이며, 佛陀가 설하신 無常의 도리가 불교와 밀교의 변천과정에 어김없이 적용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密敎연구에 있어서는 시대적 구분과 그 변천과정과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하겠다.
(2) 밀교의 시대적 구분
밀교는 기원후 3~4세기경 인도에서 발생하여 크게 발전하다가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전파되었고, 주로 중국에서 한국과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또한 인도에서 티벳과 남방으로 전파되기도 하였다.
밀교는 발생시기에 따라 초기밀교, 중기밀교, 후기밀교의 세 시기로 구분하는데, 본고에서 이를 먼저 서술한 후 인도밀교, 중국밀교, 한국밀교, 일본밀교, 티�밀교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가. 초기밀교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성립되면서 대승경전에 진언과 다리니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목적이 대부분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바라는 世間的 이익을 위한 것이 되었다.
이를 초기밀교라 하는데, 기원후 3~4세기경부터 7세기 중엽까지 유행한 밀교를 말하며, 밀교가 독립된 교리나전문화 실천체계가 나타나기 전으로 대승경전 가운데 주로 진언과 다라니, 의례와 공양법 등이 부수적으로 설해지던 시기의 밀교를 말한다.
나. 중기밀교
7세기 중엽에 출현한 “대일경(大日經)”과 7세기 말엽에 출현한 “금강정경(金剛頂經)”과의 성립을 계기로 체계화된 밀교경전이 유행하던 시기이다.
중기밀교는 세간적 이익 외에 밀교의 소재를 통해 성불을 목표로 한 전문화된 밀교수행이 밀교경전에 설해진 것이 특징이다.
다. 후기밀교
8세기경 성립된 것으로 “딴뜨라(tantra) 중심의 밀교경전이 유행한 시기의 밀교이다.
“딴뜨라(tantra)는 힌두교와 불교를 포함하여 경전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밀교의 경우는 <후기밀교경전>을 가리킨다.
◇ 후기밀교의 특징
대락사상(大樂思想)의 교리와 더불어 의학과 생리적 지식을 수행에 반영시킨 생기차제(生起次第)와 구경차제(究竟次第)의 독특한 수행체계가 설해져 있다. 후기밀교는 인도와 네팔, 티벳에서는 크게 융성했으나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는 전승되지 않았다.
2. 본론
(1) 인도밀교
가. 인도밀교의 기원
BC 1,800년경 서북방으로부터 아리아인이 침공하여 인도의 원주민인 드라비드족과 문다인을 정복하였고, 아리아인과 원주민의 종교가 융합하여 졌으며, 그 성전이 베다이다.
베다성전에 있는 제사의식이 밀교의 호마법과 공양법의 원형이라 하겠다. 이러한 밀교소재는 기원후 3~4세기경 대승불교경전에 적극 수용되었다.
나. 힌두교와 밀교
기원후 1~2세기경 불교교단은 부파불교시대에 있었고, 베다교, 자이나교, 유물론 등 이 시기의 인도 정신계는 지나치게 사변적 논쟁으로 발전하게 되어 일반 대중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반동으로 탄생한 것이 대중과 친숙한 힌두교다.
힌두교는 3~4세기경 제사법과 주문을 통해 신들의 영험이나 신비한 힘을 얻기를 소망하는 수단들이 증가하였다. 힌두교는 굽타왕조가 인도를 통일하던 시점에 굽타왕조로의 보호와 지원을 받아 크게 성장하였다.
반면에 불교교단은 위축되었고, 이로 인하여 대승불교가 밀교화하게 되어 대승경전에는 주문과 다라니가 크게 증가하였다.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종교는 역사적으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힌두교와 밀교의 차이점]
베다문헌과 힌두교의 의식 가운데 진언과 불상, 제사의식 등 밀교의 소재가 되는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힌두교와 밀교는 형태는 비슷하나 종교적 근본 목적은 전혀 다르다.
1) 힌두교 : 우주와 생명은 브라만에 의하여 창조되고, 모든 존재에는 브라만의 속성이 깃들어 있으며,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은 자아의 영혼에 담긴 브라만의 속성을 인식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결국 힌두교는 有사상을 기반으로 성립한 종교이다.
2) 불교 : 연기법에 근거한 無我사상을 근간으로 해탈은 有와 無의 상대적 대립을 초월한 中道의 깨달음과 아집과 법집의 번뇌를 벗어나기 위한 수행으로 가능해진다.
특히 붓다의 연기설은 대승불교시대에 般若, 中觀, 唯識, 如來藏 사상으로 발전
하였고, 이로부터 밀교가 성립되었기 때문에 밀교는 교리적으로 석존의 연기법을 계승한 것이다.
다. 인도 밀교성립의 사상적 배경
인도밀교는 대승불교의 연기, 반야, 중관, 유식, 여래장 사상으로부터 성립되었으므로 이에 대하여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1) 緣起法과 般若사상
근본불교에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은 연기이다.
부처님은 이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의존관계에 있음을 설하였다.
이 <상호의존>이란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며, 이 관계가 바뀌면 새로운 질서가 연출된다. 그리하여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날 때 저것이 생겨난다.
생명이 존재하려면 땅과 물과 공기와 빛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수 없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 생물이나 무생물도 함께 존재하고 공존해야한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따라서 이 의존관계 속에서 평등과 평화라는 것을 생각해야한다. 즉 내가 귀한 만큼 내가 의지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존귀하다.
삼라만상이 존재하므로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의지해 있고 같은 뿌리로 나온 것임을 알고 나면 평등심과 자비심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부처님의 많은 설법도 이 연기법으로부터 출발했으며, 이 연기법의 이치를 철저히 깨우치면 부처님 법문의 모든 것을 다 터득할 수 있다.
대승불교시대의 반야사상은 연기법의 無我사상을 발전시킨 것이다. 諸法의 無自性과 더불어 진리의 세계로서 연기의 현상적 측면을 동시에 설한 것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연기의 이치를 空으로 나타내었다.
<반야심경>에서 “色不異空 空不異色”은 眞理의 현상과 空性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밀교의 성립은 대승불교시대에 전개된 반야사상과 중관, 유식 등의 사상적 배경을 기반으로 전개된 것이지만 그 근본은 연기법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2) 中觀사상
연기설을 중도의 논리를 통해 대승불교의 공사상으로 확립한 것은 용수보살(용수보살,150~250)이다. 용수는 <중론>,<화쟁론> 등의 철학서와 <대지도론>, <십주비바사론>, <보행왕정론> 등 대승의 윤리를 밝힌 많은 작품을 남겼다. 용수의 사상은 밀교의 많은 유파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용수보살은 <中論>에서 八部中道로서 연기를 규정하였다. 8부는 不生, 不滅, 不常, 不斷, 不一, 不異, 不去, 不來이다. 中道설은 有無나 生滅, 一異, 去來 등 어떠한 결정된 개념이나 인식을 부정함으로서 공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일체의 주관적 사고체계나 인식, 가치판단을 부정한다.>
용수는 “승의제(勝義諦)와 세속제(世俗諦)의 이제설(二諦說)을 주장하였으며,
勝義諦의 입장에서 진리는 언설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지만, 世俗諦의 입장에서는 가명(假名)의 시설을 통해 논의의 대상이 된다.”고 설하였다.
용수 이후의 중관학파는 진리의 궁극적 명제를 부정하는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와 인정하는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로 나뉘어졌다.
3) 唯識사상
유식사상은 용수의 공사상을 계승하여 대승불교의 존재론적 관점을 심식설(心識說)을 중심으로 정립하고, 이를 대승불교의 수행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유식설은 초기불교의 唯心론을 계승한 유가행파(瑜伽行派)의 유가사(瑜伽師)에 의해 기초가 세워졌다. 대표적 경전으로는 해심밀경과 대승아비달마경이 있으며, 海心密經은 망식의 근거지로 <알라야식>의 존재를 지목하였다.
유식계의 경론에는 아뢰야식과 말나식, 의식과 5식 등 8식설의 체계와 더불어 3성설(三性설)을 통해 유식의 실천적 입장이 정리되었다.
●三性설은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으로 이를 통해 전개된 유식의 수행은 염오된 마음의 근원인 내외 인식의 공성을 깨닫고 個我의 망집을 벗어, 심식의 진여성을 회복하는 전의(轉依)로 요약된다.
4) 如來藏사상
여래장 사상은 범부에게 여래의 體性이 감추어져 있다는 교리에 입각해 설한 것으로 自性淸淨心사상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여래장 사상은 중관과 유식의 이론을 발전시킨 것으로 <승만경>, <여래장경>, <열반경> 등에 의해 확립되었다.
이 여래장 사상이 대승불교학설로 완전하게 자리를 잡은 것은 중국에 와서이다.
라. 시대별 밀교경전
인도밀교는 전술한 바와 같이 발생시기에 따라 초기밀교 중기밀교 후기밀교의 세 시기로 구분하는데, 이장에서는 시대별로 밀교경전을 서술하고자 한다.
1) 초기밀교경전
초기밀교는 기원후 3~4세기경부터 7세기 중엽까지 유행한 밀교를 말하며, 밀교가 독립된 교리나전문화 실천체계가 나타나기 전으로 대승경전 가운데 주로 진언과 다라니, 의례와 공양법 등이 부수적으로 설해지던 시기의 밀교를 말한다.
초기밀교 경전들은 이전의 대승경전에서 다라니를 염송함으로서 삼매를 얻으려는 본래의 목적이 쇠퇴하고, 또한 억지(億持) 위주의 다라니와 주술중심의 주(呪)의 기능적 구분이 서로 없어졌다.
[소작 딴뜨라 : 초기밀교의 경전들]
2) 중기밀교경전
7세기 중엽에 출현한 “대일경(大日經)”과 7세기 말엽에 출현한 “금강정경(金剛頂經)”과의 성립을 계기로 체계화된 밀교경전이 유행하던 시기이다.
<대일경>의 출현은 조직적인 주와 다라니, 종자관 등이 설해지고 성불을 위한 정비된 관법이 설해진 것으로 인도의 밀교를 새로운 차원에서 정립한 밀교사적 의미가 큰 경전이다.
대일경은 크게 <진언문>의 총괄적인 교설을 설한 부분과 구체적인 진언과 수인 불형을 다룬 내용의 부 부분으로 나뉜다.
[행 딴뜨라 : 중기밀교의 경전 특히 대일경을 중심으로]
<금강정경>은 산스끄리뜨 원문이 현존하며, 티벳본과 한역본을 합해 종류의 판본이 현존한다. 경전은 크게 의궤분과 교리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의궤분은 금강계만다라를 實修하기 위한 내용으로 경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의궤분은 다시 <금강계품>, <항삼세품>, <편조복품>, <일체의성취품>의 4품으로 나뉜다.
이 중기밀교는 세간적 이익 외에 밀교의 소재를 통해 성불을 목표로 한 전문화된 밀교수행이 밀교경전에 설해진 것이 특징이다.
[瑜伽 딴뜨라 : 대승불교의 瑜伽行派의 전통을 기반으로 유식설의 이론과 轉識得智의 수행이념을 밀교적 수법으로 완성한 중기밀교경전의 하나 = 진실섭경].
3) 후기밀교경전
● 딴뜨리즘의 성립
8세기 인도 후기밀교시대의 인도종교는 천문학, 점성술, 의술 등이 힌두교과 불교경전에 등장하고, 특히 우주의 근본원리와 인체의 생리를 동일시한 독특한 수행체계가 발전하였다.
이 무렵 성립된 것으로 “딴뜨라(tantra) 중심의 밀교경전이 유행한 시기의 밀교이다.
“딴뜨라(tantra)는 힌두교와 불교를 포함하여 경전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밀교의 경우는 <후기밀교경전>을 가리킨다.
후기밀교의 특징은 대락사상(大樂思想)의 교리와 더불어 의학과 생리적 지식을 수행에 반영시킨 생기차제(生起次第)와 구경차제(究竟次第)의 독특한 수행체계가 설해져 있다. 후기밀교는 인도와 네팔, 티벳에서는 크게 융성했으나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는 전승되지 않았다.
후기밀교경전(딴뜨라)에 담긴 사상을 “딴뜨리즘”이라한다. 이 딴뜨리즘의 성립은 벵갈, 오릿사 지역의 왕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오릿사국의 왕인 인드라부띠는 <지혜의 성취>, <성취법집> 등을 저술하였다. 그의 아들 빠드마삼바바는 티벳에 밀교를 전하였다.
이 <성취법집>에 의하면 범부의 심식을 五智의 佛智로 전환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불할 수 없으며, 이를 성취하면 자아와 일체의 사물을 공성으로 보고 어떤 음식도 가리지 않으며, 수행을 위해 짠달리와 같은 천족의 갈마인을 통해 성취할 수 있다고 설해져있다.
[무상유가 딴뜨라 : 후기밀교 시대의 경전군이다 - 無上瑜伽는 최고의 瑜伽라는 의미로 무상유가딴뜨라가 유가딴뜨라의 전통을 기반으로 성립하였다.]
● 딴뜨리즘의 분류
후기밀교경전(무상유가 딴뜨라)은 세부적으로 方便딴뜨라와 般若딴뜨라, 不異딴뜨라로 나눈다.
가) 方便딴뜨라
方便딴뜨라는 父딴뜨라로 불리며 대표경전으로는 <비밀집회 딴뜨라>가 있으며, 무상유가부 밀교경전 가운데 비교적 초기에 성립되었다. 이 경전은 인도와 티벳에 중시되었고 중국이나 한국 일본에는 전해지지 않았다.
유가딴뜨라와 비교해 중음신과 육신을 佛身으로 구현하는 3신성설의 유가가 설해진다.
나) 般若딴뜨라
母딴뜨라고도 불리며 방편딴뜨라에 비해 수행체계에 있어 육신성취와 관련된 생리적 기술과 대락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5마사(오마사) 등의 의식이 실행된다.
[헤바즈라딴뜨라]가 대표적이다.
다) 不二딴뜨라
교리와 수행체계 양면에서 방편과 반야딴뜨라를 수용하여 새롭게 발전시킨 밀교이다.
본초불(本初佛)이 등장하고, 색심불이의 우주관을 적용시킨 천문, 역학, 의학의 지식을 비롯해 독특한 생리학적 해석을 볼 수 있다.
不二는 비밀집회(딴뜨라)를 중심으로 한 부딴뜨라와 헤바즈라, 상와라 등의 모딴뜨라를 통합하는 의미가 있다.
[時輪딴뜨라=깔라챠끄라딴뜨라]가 여기에 해당하며, 인도밀교사상 최후에 나타난 것으로 이슬람의 침공에 대비하자는 것이 역사적 주제이다.
마. 인도밀교의 전파
인도에서 형성된 밀교는 북쪽의 실크로드와 남쪽의 해로 동쪽의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티벳과 네팔, 몽골로 전해졌다.
1) 북전(북전)
인도의 서북부로부터 간다라를 경유 파미르 산맥을 넘어 실크로드를 경유하는 길이다. 중국과 인도의 교역 교통로이며 현장을 비롯해 대다수 구법승들이 이용하였다.
밀교의 경우 선무외(善無畏), 시호(施護), 천식재(天息災) 등이 이 경로를 통해 인도밀교를 중국에 전했다. 중앙아시아 구자국 출신의 불도징(佛圖澄)도 이 길을 경유했다.
2) 남전(남전)
동남아시아를 경유해 해로를 통한 전파로 동인도와 남인도를 출발해 수마트라, 자바를 거쳐 중국남해나 동부지역에 도달하는 것이다. 당나라 시대에 <남해기귀전>, <서역구법고승전>을 남긴 의정(義淨), 금강지(金剛智), 불공(不空)이 이 길을 이용했다.
3) 동전(동전)
히말라야를 경유해 네팔, 티벳을 지나 몽골까지 도달하는 길이다. 티벳밀교의 형성에 기여한 <빠드마삼바바>와 顯密兼修의 교학체계를 완성해 티벳불교 형성에 기여한 <아티샤>, 위대한 역경가인 <린첸상포>와 까규파의 개조인 <마르빠> 등이 이 경로를 왕래했다.
네팔은 밀교와 힌두교가 공존하는 양상을 보였고, 몽골의 밀교는 구빌라이칸이 티벳불교에 귀의한 것이 계기가 되어 티벳밀교를 계승하였다.
(2) 중국밀교
중국의 밀교도 인도밀교와 같이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눈다.
가. 형성기
중국의 초기밀교는 주술과 다라니 중심의 밀교경전들이 한역되기 시작한데서 비롯되었다.
불교가 최초로 전해진 것은 한 무제 때였다. 밀교가 본격적으로 인식된 것은 동진(317~420년)시대로 당시 중국에는 주술중심의 도교가 번성하였다.
불도징은 주술에 능하여 後趙 石勒의 귀의를 받았고, 백시리밀다라는 <대공신주경>, <대관정신주경>을 비롯한 밀교경전을 번역하였다. 이후 서역출신 담무란, 담무참도 주술에 능했다. 당나라 정관 때 智通은 <천수천비관세음다라니신주경>을 번역하였다.
나. 성장기의 밀교고승
1) 선무외(善無畏; 637~735)
선무외는 동인도 우다국 왕족출신이며, 먼 선조는 석존의 숙부인 감로반왕이다. 나란다寺의 달마국다 문하에서 밀교를 수학하고 더욱 정진하여 삼장이 되었다. 당나라 현종4년 80의 고령에 장안에 도착하여 <흥복사> 남원에 거주하였고, 뒤에 <보리원>에서 <대일경> 7권을 번역하고 일행에게 <대일경>을 강의했다. <소실지경>,<소바호동자>3권을 번역하였고, <금강정경>의 37존의 체계인 <오부심관>을 저술하였다.
제자로는 一行, 至嚴, 義林과 신라의 제자로 玄超, 不可思議가 있다.
2) 금강지(金剛智; 671~741)
중인도 국왕 이사나바르마의 세 번째 왕자로 10살 때 나란다寺에 출가하였다. <聲明論>등 대승의 중관, 유식을 배웠으며, 31세에 용지에게서 밀교의 깊은 뜻을 배웠다. 남쪽 관음성지인 <보타락가산>을 방문하고 중국전법의 계시를 받았다.
해로를 통해 개원 8년(720년) 낙양에 도착하여 당나라 현종의 큰 환영을 받고, 國師가 되었다. 낙양과 장안에서 20년간 금강정경계 경전과 의궤를 번역하고, 제자 불공과 함께 <금강정유가중약출염송경> 4권을 번역하였다. 제자로는 不空, 一行, 慧超, 義福 등이 있다.
밀교대사인 금강지와 그의 제자인 불공금강은 밀교경전에 담겨있는 진언(주문)들을 시행하여 스스로 신통력도 얻고, 대중들에게 많은 소망을 듣게 해주었다
3)일행(一行; 683~727)
형주 경선사에서 출가하고, 금강지로부터 다라니의 비인을 선무외로부터 대일경을 수학했다. 도교를 비롯해 천태산 국청사에서 수학, 역학을 배워 이들 모두에 능했다. 大慧禪師라는 칭호를 받았다.
4)불공(不空; 705~774)
서역출신으로 바라문출신의 아버지와 사마르칸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0세에 입당하고, 15세에 금강지 삼장을 만나 스승으로 모셨다. 외국어에 능통하여 금강지의 번역을 도왔다. 뒤에 금강지로부터 밀교를 배우고 법을 전수 받았다. 37세(741년) 인도 사자국에 도착해 국빈 대우를 받고, 불아사(佛牙寺)에 머물렀다. 여기서 용지 아사리에게 밀교의 오의를 전해 받고, 746년 범어경전 1200권 등을 가지고 唐에 돌아왔다. 이후 현종의 적극 지원 하에 번역에 종사하였다. <진실섭경>, <일자불정륜왕경> 등을 번역하고 안록산의 난(755년)을 밀법으로 진압하였다.
이후 호국경전<인왕경>을 재번역하여 강술하고, 특히 오대산에 금각사를 세워 밀교도량으로 삼아 문수신앙을 전국에 보급하였다. 제자로 함광, 혜초, 혜과, 원교, 각초 등이 있다.
5)혜과(惠果; 746~805)
신풍 출생으로 9세 때 불공의 제자 담정에게 출가하여 17세부터 불공에 의탁하여 밀교를 수학하였다. 22세 때 선무외의 제자 현초로부터 <대일경>, <소실지경>을 전수받고 불공으로부터는 금강정계의 밀법을 전수받았다. 770년 25세 때 代宗의 청을 받아 영험을 보이고, 치병, 기우법을 행하였다. 781년 신라의 慧日, 悟珍 등 수많은 제자를 두었다.
또 일본의 空海에게 양부 비법을 전하여 일본 밀교의 기틀을 세우도록 하였다.
다. 쇠퇴기
혜과이후 중국에는 <소실지경>의 지위가 높아졌다. 이는 뛰어난 실지를 얻기 위한 작법을 설한 것이다. 이는 혜과 이후 황실의 밀교가 도교의 현세이익적인 영향으로 성불의 문제에 소홀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당나라 무종은 도교를 편애하였고, 회창2년(842년)에 폐불을 단행했다. 또 세종의 폐불(955~959)로 불교가 큰 타격을 받았고, 밀교도 침체되었다.
11세기 북방의 거란족에 의해 遼나라 세워진 후 道宗 때 밀교가 번성하였다.
각원(覺苑)은 화엄교학에 의거하여 <대일경의석연밀초>10권을 저술하였다.
송나라와 요나라 시대에는 밀교는 민간신앙과 융합되어 주술신앙으로 변질되었다.
(3) 티벳밀교
가. 전전기
토번(티벳)이 다수의 부족을 통합하여 6~7세기경 통일왕국인 <송첸감뽀> 시대에 인도의 정통 불교와 중국으로부터 선불교가 들어와 매우 혼란하였다.
그후 티송데첸(755~797)왕은 계율과 교학을 중시하는 인도불교를 국가적 종교로 선택하였다. 이시기에는 현교가 중심이 되었다.
나. 전후기
티벳불교는 랑달마앙의 불교탄압으로 밀교가 유행했다.
다. 티벳불교 중흥기
아띠샤는 1042년 티벳에 도착하여 <보리도등론>을 저술하였고, 육바라밀과 밀교의 수행을 겸하는 顯密兼修를 강조했다. 14세기경 티벳의 불교교학 체계화에 기여하고, 많은 저서를 남긴 부뙨(1290~1364)은 밀교경전에 대하여 딴뜨라로 규정했다.
라. 티벳불교의 종파
1) 겔룩파
겔룩파는 교학을 중심으로 현밀겸수의 종학 체계를 전통으로 삼는다. 대표자는 <쫑카빠>이며 <보리도차제론>, <비밀도차제론>을 지었다.
2) 까규파
까규파의 시조는 <마르빠>이다. 까뀨파의 수행은 엄격한 계율을 통한 혹독한 수행이 특징이다. 나로6법과 마하무드라가 대표적 수행법이며, 마르빠를 이은 <밀라레빠>의 제자 <깜뽀빠>가 까뀨파의 체계를 세웠다.
3) 닝마파
닝마파는 전전기의 티벳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유일한 종파이다. 따라서 닝마파에는 원초적인 <무상유가딴뜨라>의 형태도 볼 수 있고, 중국의 선종의 영향도 남아있다. 닝마빠의 밀교수행으로 족첸이 유명하다.
4) 샤까파
샤까파는 꾼촉곌뽀에 의해 샤꺄지방에 절을 세우고 수행과 포교에 힘쓴 데에 있다. 밀교에 우위를 두어 수행의 마지막 단계에서 母딴뜨라인 <헤바즈라딴뜨라>를 수학한 꿍가닝뽀(꾼촉곌뽀의 아들)가 샤까파의 교학과 수행체계를 세웠다.
(4) 한국밀교
가. 밀교의 도입
중국으로부터 불교가 전래되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중국불교의 시대적 흐름과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특히 당나라 때 중국밀교가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신라 구법승 중에 당나라에 가서 밀교를 전수 받아온 자가 많았다.
현재 한국불교의 경전, 건축, 의식, 미술 등에 밀교적 요소가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밀교에 대한 자료가 한국불교사에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해외 불교역사자료에 의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데, 당나라시대 때 신라에서 특히 밀교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구법 밀교고승으로 惠通, 義林, 慧日 등이 입당 후 밀교수학하고, 신라에 돌아와 전법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한국불교사 / 경서원 / 김영태 / P105~108 (밀교전법)
나. 구법 밀교고승
1) 혜통(惠通)
당나라에 가서 無畏(무외)三藏에게 밀교를 배워 귀국하여, 해동진언종의 초조가 되었다. 신주와 밀행에 능하였고, 밀교의 풍을 크게 떨쳤다.
2) 의림(義林)
신라승 의림도 선무외(637~735)와 금강지(669~741)로부터 밀교를 전수받았다. 國師大阿闍梨(대아도리)로서 크게 활동하였고, 그는 법을 순효(順曉)에게 전했다. 순효(順曉)는 용흥사에서 태장계의 밀교를 일본 최징에게 전수했다.
3) 혜일(慧日)
781년(신라 선덕왕 2년)에 입당하여 청룡사 혜과로부터 태장계와 금강계 등 밀교를 전수 받고 귀국 후 교법을 널리 폈다.
다.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신라밀교
理法 수행에 해당하는 <대비로차이나성불신변가지경>의 입진언문 십주품과
지법 수행에 해당하는 <금강정일체여래진실섭대승현증대교왕경>의 일부와 <금강정유가중략출염송경>의 의례부분이 삼국유사에 일부 실려 있다. 이로서 신라시대에 밀교가 성행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신라밀교 / 하남출판사 / 비로 영우/2001.02.01
라. 밀교의 영향
◇ 千手經
현재 한국불교의 모든 의식이나 불공에 반드시 사용되고 있는 <千手經>은 밀교경전이다. 진언과 다리니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경전으로 관세음보살에 대한 예배, 찬탄, 참회, 발원, 회향 등이 주요내용이며 대표적인 대승경전의 사상을 다 포함하고 있다. 진언을 통해 身口意 삼업을 정화시키고 진 참회를 통하여 업장을 소멸시키고, 다라니의 위신력(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통해 소원성취하고, 그 공덕을 모든 중생에 회향하고, 삼보에 귀의하고, 닦고 또 닦아 마침내 성불까지 나아가도록 하는 경이다. 顯密이 한데 어우러진 경이다.
. ●천수경의 비밀 / 민족사 / 김호성 지음/ P25~27/35,151,153,144,209/
◇ 한국불교사에 관한 그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밀교>와의 관계는 간과 될 수 없다.
한국불교의 내면에는 밀교와 밀교적인 것들이 높게 자리하고 있다.
(한국밀교사상사/서윤길/운주사/2006.11.10/서문)
즉 우리나라 불교경전, 사찰 건축, 불교미술, 범패, 불교의례, 불교의식 등 제반 불교문화에 밀교의 영향이 다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5) 일본밀교
가.일본불교의 도입기
나라시대에 밀교가 전래되었는데 주로 잡밀계의 경전번역이 중심이 되었다. 후한과 당대중기에 초기밀교를 중심으로 경전이 번역되었고, 9세기 당에 유학한 밀교승들의 활약으로 일본밀교의 기초가 잡혔다.
나라시대 밀교는 초기에는 일반서민들에 의해 다라니 신앙과 주술이 크게 유행하였다.
나. 일본밀교의 고승
1) 최징最澄(804~805)
傳敎大師 최징은 空海와 같이 입당하여 天台山에서 천태를 배웠고, 뒤에 용흥사에서 신라승 순효에게 태장계의 밀교를 배웠다. 귀국하여 천태종을 세웠고, 그의 제자들에 의해 천태밀교가 이루어졌다. 천태밀교는 천태의 지관업(止觀業)과 밀교인 자나업(遮那業)으로 나누어 수학한다. 천태밀교를 줄여서 台密이라고 한다.
2) 圓仁(794~864)
원인은 최징의 제자이며, 최징 입멸 후 입당하여 오대산과 장안에 가서 천태와 밀교를 수학하였다. 空海가 전래한 밀교는 일본 東寺를 중심으로 하여 東密이라 하였다. 원인은 동밀에서 金胎兩部불이를 원칙한 반면 태밀에서는 태금양부불이는 蘇悉地에서 건립된다고 하여 3부 건립을 주장하였다.
최징이 현밀을 동등하게 평가한 반면, 圓仁은 실천적 면에서 밀교가 수승하다고 주장하였다.
3) 弘法大師 空海(774~·835)
空海는 일본불교의 교리적, 실천적 기반을 세우고 高野山을 중심으로 진언종을 개창하였다. 공해는 입당하여 청룡사에서 혜과를 만나 금강계와 태장법을 전수받고 傳法아사리가 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변현밀이교론>, <시주십론>, <즉신성불의> 등 진언종뿐만 아니라 일본 불교 내 밀교의 입지를 명확히 하고 그가 남긴 영향은 일본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4) 圓診(814~891)
원진은 공해의 생질이며, 입당 구법하여 園城寺를 중심으로 부법 제자를 길러내었다. 그는 사문파의 조사가 되었으며 교판론에 있어 5시 교판을 세우고 밀교를 제5시의 설로 규정하였다.
다. 일본밀교 특성
공해는 大日如來에 대해 <則事而眞 果分可說> 즉 진리의 세계는 현상계에 즉해 있으며, 법신의 세계는 표현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공해는 법신의 대일여래의 체상용을 6대(六大), 4만(四曼), 3밀(三密)로 체계화하고, 실천적으로는 삼밀을 통한 則身成佛을 주장하였다.
일본 밀교는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의 건축, 문학, 미술, 체육, 의례, 의식, 문화 등 사회 전반에 밀교적 요소가 들어있다. 예를 들면 정원이나, 건축, 요리 등에서 작은 공간에 큰 정신을 담는 기술도 만다라나, 삼매야형 등의 상징물을 통해 소우주에서 대우주를 경험하려는 밀교의 영향이 반영된 것이다.
3. 맺는 말
밀교는 그동안 근본교리인 연기와 공의 중도를 근간으로 하여 오랜 시대 여러 민족의 잡다한 문화요소를 흡수 활동하여 대승불교로 발전하면서 드디어 <밀교>라는
열매를 맺었다. (금강대승밀교총설/정태혁/정우서적/2003.05.15)
밀교의 발전도 그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서 발전되어 갔으며, 초기 진언과 주술적
현세 구복적 밀교에서 현밀을 동시에 중시하는 밀교로 또 즉신성불을 주로 하는 밀교로 거듭 변천해 왔다.
오늘날 동북아 특히 한국불교의 내면에는 밀교와 밀교적인 것들이 높게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한국의 전국사찰에서 의식을 할 때 거의 빠지지 않고 있는 千手輕은
대승불교의 가장 발전된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대표적 밀교적 경전이다.
●한국불교사상사/ 운주사 /서윤길 / 2006. 11.10
북방불교를 연구하려면 대승불교를 알아야하고 그 열매인 밀교를 반드시 탐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산물이며, 불타가 설하신 無常의 도리가 불교와 밀교의 변천과정에 어김없이 적용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밀교연구에 있어서는 시대적 구분과 그 변천과정과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하겠다.
4. 참고문헌
(1) 기본교재
●밀교학의 기초지식 / 도서출판 eastward / 정 성준 저
(2) 참고서적
●한국불교사 / 경서원 / 김영태 / P105~108 (밀교전법)
●금강대승밀교총설/ 정우서적/ 정태혁 / 2003.05.15
●한국불교사상사/ 운주사 /서윤길 / 2006. 11.10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신라밀교 / 하남출판사 / 비로 영우/2001.02.01
●중국불교 / 민족사 / k.s.케네쓰 첸/ 박해당 옮김/ P 357~369 (밀종)
●천수경의 비밀 / 민족사 / 김호성 지음/ P25~27/35,151,153,144,209/
(3) 참고사전
●불교사전 / 동국역경원 / 운허 용하 지음
●국어사전 / 민중서림 / 이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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