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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집착에서 집중으로, 어둠에서 광명으로(920)행복의 문 - 행복열쇠 (1) 2018. 1. 24. 04:39
집착에서 집중으로, 어둠에서 광명으로(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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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고향에 땅이 있는 김거사님이
고민이 생겨 상담을 왔습니다.
시골에 땅이 하나 있는데
어떤 사람이 바로 이웃 땅을 사면서
김거사의 땅을 팔아라고 했습니다.
김거사 소유 땅 모양이 폭이 좁고 길게 생겨
경제적 가치가 크지 않아 고민했는데
마침 그 땅을 매수할 임자가 나타났으니
잘 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매매하기로 약속을 하고
시골로 내려가려고 하던 전날
갑자기 마음속에 누가
“너 그 땅을 왜 팔려고 해?
가만히 두면 너희 들 잘살게 될터인데”라는
말이 떠올라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놀라서 여기 저기 물어보다가
결국 필자에게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사님 조금이라도 꺼림직한 일이 있으면
팔지 마십시오. 더구나 그 땅 안 팔아도 살 수 있다면
팔지 않는 것도 좋겠습니다.”
“네, 스님, 한 오년 전, 방금 이야기 한 그 땅 아래에
있던 땅을 팔고 난 후, 제 사업이 엉망이 되었거든요.”
“네, 거사님 운이 좋은 사람은 고향 땅을 사게 되고
운이 나빠지는 사람은 고향 땅을 파는 경향이 있답니다.”
그렇게 상담을 한 후 김거사는 땅을 팔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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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일주일이지난 오늘
김거사가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땅을 팔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가 자꾸 들었습니다.
“음, 내가 바보같이 왜 팔지 않았지?
그 땅이 아무 쓸모가 없는 데 임자가 나타났을 때 팔아야지.
참으로 어리석다.”이렇게 생각하다가
“아니다. 그 땅을 팔면 또 내가 망하는 수가 있어.
내가 그 전철을 또 밟을 수는 없는 법이지.”
이렇게 생각이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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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거사가 말했습니다.
“스님 저는 지나간 일에 대해
자꾸 후회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러한 버릇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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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요?
그것은 김거사님의 습관 때문입니다.
과거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자꾸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의심하는 버릇이요,
궁극적으로는 탐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탐심이 적으면 어떤 일을 해도
인정을 잘 합니다.
즉 작은 것에도 만족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해도 만족을 합니다.
그 결과 고민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위 내용을
김거사님에게 말했습니다.
“거사님 먼저 자신의 생각의 습관을
잘 생각하고, 그러한 습관이 있음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그 다음 그러한 생각이 일어나면
‘음, 또 후회를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구나.
내가 또 탐심을 내고 의심을 하는 구나!
그것이 나의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원인이지’
이렇게 탁 알아차림 하면 됩니다.
그리고 즉시 아미타불을 외웁니다.
아미타불은 무량광 무량수란 뜻입니다.
무량광은 한없는 밝음으로
한없는 어둠을 밝혀 줍니다.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어둠을
보시와 자비와 지혜로 바꾸어 줍니다.
거사님은 집착을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집착을 위와 같이
탁 ‘알아차림’하고 ‘아미타불’하고 외우면
집착이 변하여 집중으로 변화합니다.
그러면 중생심에서 불보살의 마음으로
확 바뀌게 됩니다.
어리석음에서 지혜로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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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법이란 666법을 말합니다.
666법이란 6가지 감각기관(안/이/비/설/신/의)으로
6가지 알아차릴 대상(색/성/향/미/촉/법)과 접촉하면
6가지 식이 생깁니다.(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
결국 대상은 몸과 마음입니다.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마음이 고요해져
실재하는 진실을 발견합니다.
위 김거사의 경우에는 그 대상은
과거의 어떤 행위에 대한 생각입니다.
자신의 그러한 생각도 무상(無常)한 것입니다.
영원하지 않고 변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거의 생각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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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과 마음(생각)이
‘무상, 고, 무아’임을 진실로 알면
마음이 청정해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소멸하게 됩니다.
탐심과 의심과 같은 번뇌가
소멸한 자리에 평안한 마음이 생깁니다.
지고의 행복이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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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법을 알아차릴 때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습니다.
법은 법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은 법을 말하는 자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은 오직 대상으로 ‘알아차림’하는
자를 위해 존재합니다.
이러한 법을 존귀하게 여기면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법이 있어도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하찮은 대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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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집착, 집요한 생각인
번뇌가 일어나면
‘아 번뇌가 일어나고 있구나!
내가 그 생각에 또 집착라고 있구나!’라고
탁 알아차림 하는 것이
법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즉시
아미타불 염불을 하면
마음의 새로운 집중이 일어납니다.
사마타가 일어납니다.
염불집중, 염불삼매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집착에서 집중으로 변하여
마음이 지극히 평안하게 됩니다.
이렇게 계속 염불을 하면
어둠에서 광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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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正印)합장
2018년 1월 23
아미타불천일기도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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