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크랩]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살려고 하면 죽고, 죽기로 각오하고 싸우면 산다.세상을 향해/지구촌 소식 2011. 4. 28. 06:27
<< 충무공 탄신일(忠武公誕辰日) >>
“신에게는 아직 전선 열두 척이 남았나이다.”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충무공 탄신일을 맞아 기념비를 제막하고 있다.
(2010년 4월 28일)
충무공 은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서처럼 명량해전에서
12척의 전선으로 열 배가 넘는 왜선 130여 척을 격파했다.
◇ 충무공 탄신일(忠武公誕辰日)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나라사랑하는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제정한 기념일이다.
매년 4월 28일이며,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바쳐 왜병과 싸워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열린다.
충무공께서는 1545년 3월 8일(양 4월 28일) 새벽, 서울 건천동(인현동 1가 중에서도 중앙 지대)에서 탄생하셨다.
현충사(顯忠祠)는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지 108년 뒤인 1706년에 건립되어 그 이듬해 숙종(肅宗)의 친필 현판이 사액되었다.
그 뒤 200여년간 추모의 향화가 끊이지 않다가 일제강점기에는 헐릴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이에 1932년 충무공 유적 보존 위원회가 앞장서 사당을 재건하고 영정을 봉안했으며, 1945년 광복 이후 해마다 4월 28일 장군의 탄신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1956년 아산군 음봉면 삼거리에 있는 장군의 묘소가 사적 제112호로 지정된 데 이어 1967년에는 현충사도 정화, 단장하고 성역화되어 사적 제155호로 지정 되었다.
◇ 충무공 이순신의 생애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바쳐 왜병과 싸워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열린다. 출생 1545년 4월 28일 한성부 건천동(서울 인현동)에서 부친 덕연군 이정의 사형제중 셋째아들로 태어남 .
(※ 모친 초계(草溪) 변 씨의 꿈에 시부 (媤父)가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이 아이는 반드시 귀인이 될 것이니 이름을 순신이라고 하라"고 한 이조 (異兆)가 있어 그대로 명명) 병정놀이 꼬마 대장이 된 순신은 책에서 읽은 작전을 병정놀이에서도 적용함 "오늘은 새로운 작전을 지시하겠다. 공격하는 적군은 윗마을 병사들이 맡고 수비는 아랫마을 병사들이 한다. 수비하는 병사들은 반으로 나눠 따로 진을 치도록 하겠다!"
문무를 두루 갖춤. 말위에서 떨어짐
이 충무공 (1545 - 1598) - 휘(諱)는 순신(舜臣) ,자는 여해(汝諧) , 본은 덕수(德水)
충무는 1643년(인조 21년) 공이 순국 후 내린 공의 시호(諡號)임.
증직- 선조는 우의정과 좌의정 추증(追贈)- 정조는 영의정.
- 32세 : 함경도에 초급장교인 권관(權管)으로 임명됨 (국경경비)
- 38세 : 만호에서 파직 당함(시기하는 무리 때문에 모함으로)
- 39세 : 복직되어 함경북도 권관으로 근무,
- 47세 : 유성룡의 천거로 마침내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에 부임
- 48세 :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 발발, (옥포해전 대승첩(對勝捷)/ 경상도 사천 에서 승첩/ 제2차 당포해전 대승첩/제3차 한산도대승첩/ 제4차 부산대승첩
- 49세 : 삼도수군통제사로 승임/ 52세 : 적군의 음모와 원균의 시기로 서울로 압송
- 53세 : 정탁(鄭琢)의 상소문이 주효하여 석방, 백의종군함 다시 통제사로 복직,
- 54세 : 1598년 8월 17일 풍신수길이 죽으매 왜적의 철군 시작
▷ 왜함 500여척을 추격하여 남해 노량에서 큰 격전을 벌였음.
▷ 11월 19일 - 밤새 독전하다가 날이 샐 무렵에 탄환을 맞아 전순(戰殉)하심,
*** 임진란 이래 7년의 긴 전쟁은 수많은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 갔으며, 충무공에게는 최후의 전장이 시시각각 다가왔다. 7월 명나라 수군과 연합 함대를 결성한 우리 수군은 11월 19일 노량 앞바다에서 퇴각하는 순천 소서 행장의 군대를 공격 큰 타격을 입혔는데 이 전투가 저 유명한 노량해전이다.
이때 공은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으나 공의 나이 겨우 54세로, 마침내 충무공은 자기의 한 몸을 던져 조국을 위기에서 영원히 살린 것이다.
###
거북선은 어떤 기 적같은 것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신화도 아니며,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전함의 하나이던 판옥선을 개조한 전함으로 판옥선과는 형제지간과 같은 배이다. 거북선은 순수한 우리고유의 조선방식에 의해 건조된 국산전함이다. 거북선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지금부터 약 400년전 충무공에 의해 탄생한 거북선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큰 자랑거리로 알고 있으며 외국인들도 격찬하는 전함 이다. 그러나 유명한 이 배는 또한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다.
1. 임진왜란 당시에는 3척
2. 영조 때에는 14척이 배치되었다.
3. 영조이후 점차 각 수영 뿐 만 아니라 모든 전초에 배치하기 시작 하여
정조 6년에는 40척에 달하는 거북선이 취역하고 있었다.
▣ 이순신 장군은 어떤 분인가요?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과 사랑을 받으며 자란 이순신은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좋아하고 무예에 능했어요. 32세라는 뒤늦은 나이에 북방의 말단 수비 장교로 시작된 이순신의 관직생활은 평탄치 않았어요. 성품이 강직하고 원칙을 중시하여 상관들로 부터 잦은 모함과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전라좌수사에 부임한 이순신은 왜군의 침입이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군대를 재정비하고 거북선을 만들면서 군량미를 확보하였어요. 1592년 이순신이 우려했던 임진왜란이 일어났지만, 이순신은 만전의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어요.
▣ 충무공 이순신 장군하면 떠오르는 것!
♠ 거북선
- 임진왜란 전에 이순신 장군이 철로 만든 세계 최초의 공격용 전함이에요. 거북선의 구조를 보면 앞은 용머리 모양을 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아 적이 배에 오르는 것을 막았으며, 입으로 대포를 쏘고,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되어 있어요.
♠ 난중일기
-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쟁터에서 쓴 일기예요. 전쟁 상황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어요. 현재는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국보 제 76호로 지정되었어요.
♠ 한산도 대첩
- 임진왜란 때인 1592년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싸움을 말해요. 경상남도 고성의 견내량에 있던 왜군 함대 70여 척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해 낸 뒤 학익진(학이 날개를 펴듯이 치는 진)을 펴서 일제히 공격하여 왜군을 크게 물리쳤어요. 진주성 싸움,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로 불려요.
정인(남광)스님 : 해군OCS70차
출처 : 개운선원글쓴이 : 正印 (남광) 원글보기메모 :'세상을 향해 > 지구촌 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인터넷 성경 보기 (0) 2012.05.16 [스크랩] 佛心(불심)의 승리 (0) 2011.08.11 [스크랩] 부처님께 절하는 목사 (0) 2011.04.10 [스크랩] 경인년 정월 대보름을 맞아 (0) 2011.02.16 [스크랩] 한나라당 안상수는 ‘조계종 봉은사 직영 압력’의 주범 (0) 2010.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