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맞불 작전 에피소드 >>
◇ 지난주에 평소 자주 법담을 나누는 H스님이 강원도 영월에
일주일정도 다녀온다고 했다. 그런데 어제 그 스님이 전화가 왔다.
“스님 무더위에 정진 잘하고 있습니까?”
“네 덕분에... 스님은 강원도에 무슨 일로 다녀왔습니까?”
“네~ 중생 제도 좀하고 왔지요..허허허..”
“아니 이 무더운 여름에 중생제도를 어떻게 하고 왔는지요?”
이렇게 인사를 나누다 보니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다.
◇ H 스님의 도반스님이 강원도 영월군 어느 면사무소에 포교원을 내었는데, 포교원 주변에 개신교 교회가 있고 또 그 동네에 교회신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런데 점안식 당일 법회 중 경찰차가 왔다는 것이다.
교회 신자들이 법회 당일 목탁소리, 징소리, 북소리 등 소음 때문에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이웃 교회에서는 목사가 포교당을 망하게 하여 그곳을 떠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주님에게 하자고 선동하였고, 이웃 교회에 다니는 주민들이 똘똘 뭉쳐서 절에서 목탁소리가 나면 집집마다 확성기를 달아서 찬송가를 크게 틀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저녁 예불이나 사시 불공을 하면 예외 없이 동네에서 찬송가를 확성기를 통해 크게 내 보내니, 그 포교당 스님이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1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신경 쇠약에 걸려 확성기 소리만 들려도 식은 땀이 비오 듯 흐른다고 했다.
◇ 이러한 사정을 안 대전에 계신 H스님이 영월에 위로 차 간 것이었다.
그런데 H 스님은 예전 개신교 신자로 30년 이상을 교회 지도자로 있었던 분이다.
그래서 그 스님은 교회 신자들이나 목사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던 터라
영월에 도착하자마자 대형 확성기를 절에 달아놓고, 처음에는 확성기를 틀지 않고 예불을 하고 목탁을 쳤다. 그러면 이웃에서 확성기로 찬송가를 틀어 놓기 시작하면 이때 아주 빠른 리듬의 <능엄 신주>를 큰 확성기를 통해 같이 틀어 놓았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이웃에서 도저히 시끄러워서 자신들의 확성기를 꺼 버렸다.
그들이 꺼 버렸는데도 계속 절에서 확성기를 틀어 놓으면 경찰에 신고할 심산 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확성기를 끄면 같이 끄고 켜면 같이 켜고 했다.
소위 맞불 작전을 한 것이다.
이렇게 3일을 하니 그들이 지쳐서 이젠 목탁을 쳐도 확성기를 틀지 않게 되었다.
◇ 십 수년 전 심신수련을 목적으로 하는 어떤 연수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한 프로그램에서 큰 실내에 많은 사람들이 동서남북에서 각각 똑바로 앞을 향해 나아가게 했다. 한번 목표를 정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똑 바로 걸어가도록 하는 지시를 받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목표를 설정해 놓고 걸어가니 가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치게 마련이다. 그래도 자신이 가는 길을 똑바로 가라고 하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부딪치고 넘어지고 하였다.
서로가 자신의 길을 가야하는 데 그 길에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과 부딪치니 부딪치는 순간 묘하게도 상대에게 미운 감정이 생기게 만드는 것이다.
● 그런데 이 프로그램 후 반성의 시간에서 “자신의 길만을 걷기 위해 상대를 배려함이 없이 부딪히게 하는 것은 정말 이기심의 극치이다.” “상대가 이쪽으로 오면 피해주어야 한다. 아니면 처음부터 이웃을 생각하고, 입장을 고려해서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서로를 위하는 길이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원리를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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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연수 경험이 평생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 그렇다.
그 교인들과 포교당 스님은 이와 같이 서로가 살려면 서로 양보하고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는 원리를 깨달았을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깨닫도록 중생들에게 행동으로 법을 설하고 오신 H스님에게
부처님 제자의 한사람으로서 찬사를 보낸다.
◇ 우리 인류는 지구촌이라는 별에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피부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무참히 짓밟는 행동은
하느님도, 부처님도, 이 우주자체도
원하는 바가 아니다.
우리는 자연이란 한 뿌리에서 나온 존재이다.
결국 죽으면 자연으로 함께 돌아가는 것이다.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마호메트도
석가도
결국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 자연을 우리는
신(神)이라 부르기도 하고
불성(佛性)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무엇이라 부르는 존재는
우리 몸속에도 마음속에도
없는 곳이 없이 존재한다.
◇ 이젠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꿈에서 깨어 나야한다.
내 것이라는 울타리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 종교인도 이젠 성숙해야 한다.
자기 아빠만 이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떼를 쓰는 철수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어른으로 성장하여야 한다.
다른 아이의 아빠도
모두 다 중요하고 제일 인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평등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출생하시면서
하신 탄생게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구절을
가슴깊이 되새겨 본다.
감사합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개운정사(개운선원)
남광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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