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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와 불교 무엇이 다른가?
    불교 공부/불교입문 2008. 4. 16. 11:52
     

    불교와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와 불교 무엇이 다른가?


    ◇ 인생 일장춘몽(一場春夢)


      옛날 중국 당나라에 노생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큰 부자가 되기가 원이요, 출세하여 좋은 여자를 얻어 아들 딸 놓고 영화롭게

     살기가 원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한단(邯鄲)지방으로 가다가 신선도를 닦는 여옹(呂翁)을 만나 자기의 소원을 하소연했습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그 노인은 목침을 하나 주면서 “ 고단할 텐데 이 목침을 베고 잠깐 눈을 붙이게.” 그래서 노생은 목침을 베고 얼마 후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입신양명하고 천하절색의 아가씨한테 장가들어, 아들딸 낳고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참으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80년 한평생을 이렇게 살다가, “ 밥 먹어라.”하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떠보니 모두가 한바탕의 꿈이었습니다.

    결국 잠깐 밥 짓는 사이에 80년 동안 영화로운 꿈을 꾼 것입니다.    

     

     


     ● 위 꿈속에서의 노생과 같이 마침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空手來空手去)>인생이거늘, 자기에 대한 사랑과 헛된 욕심

    때문에 끊임없이 허망한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보통 삶입니다. 

      이처럼 인생은 영원하지가 않고 무상(無常)한 것입니다. 

     즉 인생은 동쪽에서 뜬 해가 떠서 한동안 낮을 이루다가 어느 듯 서산으로 지는 해와 같습니다.


    ◇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불교의 공통점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1788~1860)와 불교가 보는 인생의 무상함은 같습니다.

     인생을 위와 같이 무상한 일장춘몽으로 본 것은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 삶은 고통이며, 고통의 원인은 욕망이다. 그래서 이 갈망이 끝날 때 고통도 멈춘다고” 라고 주장하였으며,

    이것은 불교의 교리와 비슷합니다.

      즉 그의 주장은 불교의 사성제중 고(苦=고통), 집(集=고통의 원인), 멸(滅=고통의 소멸)까지는 불교의 원리와 비슷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의 해결방법(道)에 대해서는 쇼펜하우어와  불교는 180도 차이가 납니다.


    ◇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불교의 큰 차이점 2가지


      (1)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


      ○ 쇼펜하우어는 삶은 고통이며, 고통의 원인은 욕망이다. 그래서 이 갈망이 끝날 때 고통도 멈춘다고” 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고통의 해결방법은 살아있는 동안은 해결방법이 없다고 주장한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고통의 원천인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삶으로부터의 치유가 아니라 삶의 소멸인 것이다.

    그는 극단적인 염세주의에 빠져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삶의 포기>라고 강조한 것이다.


      ○ 불교는 삶 그 자체가 고통이 아니라 무지의 결과로서의 욕망이 고통이다. 즉 이기적인 욕망으로 자신에 집착하는 그 마음을 없애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는 <삶과 번뇌의 원천인 이기적인 욕망>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삶은 치유되며 고통은 끝나고 진정한 행복이 가능해진다고 설하고 있다.  결국 삶의 포기라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인생의 무상함으로부터 시작하였으나, 이기적인 욕망에서 벗어남으로서 진정한 건강을 보장받고,

    좋은 업을 쌓아 나쁜 업을 약화시키며, 중생을 해탈의 경지로 인도하는 것이다. 


     (2) 불교의 치유는 중도주의다.


      ○ 쇼펜하우어는 금욕주의를 예찬했다. 왜냐하면 모든 생의의지를 포기해야만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즉 극단적인 자기학대를 통하여 삶이 주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인하여 욕망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가혹하게 가난해져야한다.

     그리하여 쇼펜하우어는  신체를 학대하여 자아말살을 가져와야 한다는 극단적인 염세주의에 빠진 것이다.   

       

     ○ 불교의 치유는 극단적인 방법을 피해 중도주의를 택한다.

       붓다는 왕자로서 누릴 수 있었던 수많은 쾌락에서 벗어났고, 동시에 해탈을 위한 극단적인 금욕수행에서도 벗어났다. 

      “ 너무 긴장해 있는 영혼은 극단으로 치닫기 쉽고, 너무 해이해진 영혼은 나약함을 면치 못한다.”고 붓다는 말했다.

      따라서 불교의 심신단련은

      1) 항상 긴장과 이완

      2) 해탈에 대한 편집광적 집착이나  무관심

      3) 쾌락과 금욕주의

         위 양극단에 이르지 않게 중도를 지켜야 한다.



    ◇ 불교는 고통을 치료하는 의술방법서이다.

       

       불교는 공리공론을 목적으로 하는 철학도 아니며

              맹목적이고 맹신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종교가 아니다.


      붓다가 제기한 인생 고통의 근본적인 의문은 의사들이 환자들을 대할 때 갖는 위문과 다르지 않다. 병명은 무엇인가? 원인은 무엇이며, 병이 낫는다는 것은 어떻게 된 상태를 가리키는가? 또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하는가?

      다음은 <산스크리트어로 된> 유명한 한 경전의 내용이다. (독화살의 비유)   

         

     ● 이 경전에서 붓다는 스스로 화살에 맞아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환자의 머리맡을 지키고 있는 외과의사에 비유한 대목이 나온다.

      이때 의사는 환자에게 누가 화살을 쏘았는지, 무슨 종류의 활이었는지, 얼마나 먼 거리에서 쏜 화살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환자를 살리기 위해 화살을 제거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붓다는 욕망이라는 치명적인 독약으로부터 인간을 구하고자 한다.

      그는 삶을 치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해탈에 이르고자 정진함은 이 속세에서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염세주의>와는 180도 다른 것이다. 

     물론 의사로서의 붓다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 대하여 불난 집에 비유할 정도로 몹시 긴박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붓다는 치유가 가능함을 믿으므로, 그렇게 되기 위해 필요한 처방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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