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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밧디야~행복의 문 - 법문, 좋은글/♬--기쁨의 언어(시) 2008. 2. 8. 09:11
◇ 항상 즐거운 밧디야~
칼리고다의 아들 밧디야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은 아누피야 교회 망고 숲에 계셨다.
그런데 그 때 칼고리다의 아들 밧디야 장로는 숲속에서나 인기척 없는 곳에서나 항상 “아~즐겁다. 참으로 즐겁다.”하고 우다나를
노래하였다. 수많은 비구들은 밧디야가 출가생활의 어려움을 이기려고 옛날 왕의 신분으로 있을 때를 상기하여 저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사실을 부처님께 고했다.
부처님이 밧디야를 불러 “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그러한 우다나를 노래하는 것인가?”라고 물으셨다.
“스승이시여! 제가 옛날 속가에 있으면서 왕의 신분으로서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을 때는 궁전과 도시 안팎의 수비가 아주 튼튼하고
국경이 수비도 아주 튼튼했습니다. 스승이시여! 저는 이렇게 보호를 받고 경비가 저를 밤낮으로 지켜 주고 있었는데도 두려움에 떨고
의문만이 깊어지며 무서움에 떨며 지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스승이시여! 지금 저는 숲에 가서나 나무아래 가서나 인기척이 없는 곳에서나 홀로 있어도 공포가 없으며 떨리는 일도 없고
의문도 없고 무서움도 없으며, 혼란스러움도 없고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되어 사슴과 같은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스승이시여! 저는 이러한 이유로 항상<즐겁다.>, <참으로 즐겁다.>라는 우다나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에 세존은 그것을 아시고 이러한 우다나를 노래하셨다.
◇ 그 마음에 분노가 없으면, 이러하다, 이러하지 않다는 논쟁을 넘어 두려움이 없고,
안락하며 모든 근심이 사라지네.
◇ 불쾌한 것을 유쾌하게, 기쁘지 않은 것을 기쁘게, 괴로운 것을 즐겁게 극복하는 사람은
나태한 삶을 이겨낸다.
◇ 진리를 찾고, 가르침을 잘 받드는 사람은 아무것도 지니지 않아도 즐겁다. 사람이 무엇인가 소유하다 도리어 괴로움을 당하는 일을
흔히 보게 된다. 사람은 사람에게 속박되어 있기가 예사이기 때문이다.
□ 사주상담을 원하는 사람 중 사랑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참 많다. 그것은 갈애다. 갈애란 사랑을 원하는 마음이
사막에서 갈증 날 때 물을 구하는 것과 같이 필사적인 마음이다. 이 마음이 일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랑으로 보인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얻지 못하면 그 순간 가장 무서운 증오로 돌변하여 분노의 마음이 일어난다.
그리고 스스로 고통스러워한다.
● 자신이 원하는 것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얻지 못할 때 크게 상심하고, 급기야 분노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원인은 상대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상대가 자신에게서 얻을 그 무엇이 없을 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때문이다.
● 또 자신이 상대에 집착하는 마음 때문에 더욱 고통 받는 것이다. 상대를 나의 것이 라는 소유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것은 결국에는 변화하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도, 상대의 육체도, 상대의 마음도 또 내 마음과 나의 육신도 변화한다. 이 변화하는 것에 목숨 걸지 말라는 것이다.
● 이 세상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바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는 더욱 그러하다.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나의 결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려서 서로 대등한 관계가 되어야 마음의 평화가 온다.
● 일방적으로 상대에 매달리는 것은 비참한 것이다. 반대로 나의 아상에 젖어 상대를 무시하는 것 또한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 서로가 통해야 한다.
그래서 서로를 잘 알고, 대화하고, 서로 존중할 때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알 때
너와 내가 하나로 통하게 된다.
이것이 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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