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와 허상
메타인지와 허상(虛像)(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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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물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허상(虛像)을 보기 쉽습니다.
허상(虛像)이란 실재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실재와는 다르게 보이는 모습입니다.
어떤 남자가 달밤에 높은 옥상에서 검정 옷을 입고 서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아래에서 비켜보던 3사람이 말했습니다.
“저 사람이 옥상에서 마스크를 하지 않고 서있는 것을 보니 옥상에서 운동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 곳이 분명한 것 같아.“라고 A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실의 빠져 자살 충동에 빠져 멍하게
보고 있는 거야!”라고 B가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c가
“아니야, 요즈음 코로나 때문에 답답해서 좋은 공기 마시러 옥상에 간 것이야”라고
서로가 자신의 말이 옳다고 옥신각신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3사람은 옥상에 올라가
직접 그 사람에게 자신들이 주장하였던 말로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아니오, 나는 아파트 관리하는 사람이요. 날씨가 춥고 바람이 불어
옥상에 와서 시설물 점검하고 잠시 쉬는 중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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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례에서 모두 자기 수준에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한 것뿐입니다.
사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감(感)에 의지해서 생각하고 판단을 합니다,
그러나 이 감(感)은 사람마다 다른 극히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비한 것이나 화려한 것에 현혹되어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것은 주관적인 믿음으로 실재가 아닙니다. 허상(虛像)을 본 것입니다.
이 허상에 매달리면 괴롭습니다.
현재 지금 이곳에서 내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여 느끼는 것을
‘알아차림’합니다. 그 알아차림은 실재입니다.
즉 6가지 감각기관이 6가지 대상을 만나 가지가지 감각을 만들어 생긴 것을
‘알아차림’ 하는 것은 하나의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저 머릿속에서 움직이는 주관적인 느낌이나 생각들은 실재가 아닙니다.
6근이나 6경은 모두 인연 따라 생성되고 머물다가 사라지는 것이므로 그 실체가
없습니다. 6식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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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인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감으로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객관화하여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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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실재하지 않는 것은 꿈이며 진실하지 못합니다.
괴로움이나 슬픔이나 두려움은 현재의 자신의 마음상태를 나타낸 허상입니다.
이 허상을 허상으로 본 것이 바른 ‘알아차림’입니다.
그것이 하나의 진실입니다.
이는 일종의 메타인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말하기를
“무릇 있는 상이, 모두 허망하여 상이 아님을 알면 부처를 보리라”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라고 한 것입니다.
괴로움이나 슬픔이나 두려움도 하나의 마음의 허상입니다.
이것은 영원하지가 않습니다.
이 허상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허상이 실재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집착하고
매달려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나타난 것은 하나의 대상으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만일 자신이 괴로움과 슬픔과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괴로움과 슬픔과 두려움은 나의 감정이 만든 신기루와 같은 허상에 불과함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은 인연 화합으로 만들어지고 끝없이 변화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몸과 마음을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로 비춰보는 것이 진리를 보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 하는 것'은 일종의 '메타인지'라 할 수 있습니다.
메타인지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자비불교정토회
정인(正印)합장
2021년 1월 29
아미타불천일기도 (2025)
나무붓다야
나무달마야
나무승가야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이 괴로움과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