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일상속의 깨달음(905)
일상속의 깨달음(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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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정토사에 공부하러 오는 김 거사가 있습니다.
김 거사님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스님, 최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의 나쁜 기억이 일어나
열이 나고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모릅니다.
온통 그 생각을 하느라고요.”
“그래서 하도 고통스러워서 오늘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
그냥 ‘아미타불’만 불렀습니다. 그리고 운전에 열중하다보니
과거의 기억에 대한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정토사’에 올라오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발바닥 닿는 부분과
다리의 근육과 몸의 상태를 느끼면서 ‘아미타불’을 불렀습니다.
그러고 나니 며칠 동안 애를 먹이던 나쁜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 지난 번 스님께서 말씀하던 것이 생각났습니다.”라고
차분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네, 거사님, 어떤 말이었던가요?”
“스님, 마음을 과거의 나쁜 기억에 두어 후회하거나, 미래에 두어 미리
근심하면 정신건강에 매우 해롭다. 오직 마음을 현재에 두어 자신이 하는 일을
또렷하게 알아차림 하며, 항상 ‘아미타불’명호를 놓지 말고 부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정말 마음을 현재에 두어보니 신기하게 마음이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가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고통스럽지 않고 편안하게 될지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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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머릿속에 번뇌가 가득하면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 고통스럽습니다.
마음을 고요히 코끝에 모으고 아랫배 단전에 집중하며
한 호흡 한 호흡하되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하나하나 관찰해봅니다.
그리고 아미타불을 외웁니다.
내 마음이 아미타불처럼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는지
아니면 중생심이 일어나는지를 알아차림 해봅니다.
그리고 모든 일은 인연 따라 일어남을 알고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도록 노력해 갑니다.
좋은 인연이란 너와 내가 모두 이익 되고
함께 행복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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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2600여 년 전
음력 섣달 초파일날 샛별을 보고
위없는 깨달음을 여셨습니다.
땅으로 넘어진 사람은
땅을 짚고 일어나내 합니다.
부처님께서 출가한 후 설산에서
6년간이나 처절한 고행을 하였는데도
생사해탈의 도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쓰러졌습니다.
그 때 수자타 처녀아이가 올린 우유죽 공양을 드시고
기운을 차리시고 네란자강에 목욕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처절한 고행의 길을 버렸습니다.
쾌락과 고행의 양극단을
확연하게 ‘알아차림’하시고
양극단을 버렸습니다.
중도를 깨우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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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사유(思惟)했습니다.
“생사를 건 고행을 했는데도
왜 내가 도를 이루지 못하였을까?”라고 자문하셨습니다.
“그것은 ‘고행을 해야 도를 이룰 수 있다.’는 한 생각에
집착을 했기 때문이다. 집착을 하면 마음이 청정하지 못해
우주의 실상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이제 부처님께서는 고행주의에서 벗어나시고
보리수나무아래에서 7일간 용맹정진한 끝에 무상대도를
얻으신 것입니다.
마음이 지극히 청정해지자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연기의 이치가 확연히 들어났습니다.
“왜 죽는가(死)?”
“태어났기 때문이다.(生)”
“왜 태어났는가?”
“태어날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다.(有)”
“태어날 원인이 무엇인가?”
“유(有/識)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유가 있게 되었는가?”
“취(取/行)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취가 있게 되었는가?”
“애(愛/相)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애가 있었는가?”
“수(受)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수가 있었는가?”
“촉(觸)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촉이 일어났는가?”
“육입(六入=6감각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육입이 있었는가?”
“명색(名色/대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명색이 있었는가?”
“식(識)이 이었기 때문이다.”
“왜 식이 있었는가?”
“행(行)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행이 있게 되었는가?”
“무명(無明)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사 생사윤회의 시작이
무명(無明)에서 시작되었음을 밝혀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무명을 없애면 결국
생사윤회에서 벗어나는 이치를 확연히 깨달으셨습니다.
드디어 삼명(三明)이 밝아왔습니다.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을 여시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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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明)은 밝지 못한 어리석은 마음입니다.
이것은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오는 마음입니다.
또한 진리에 밝지 못한 마음입니다.
진리는 무상(無常)과 무아(無我) 그리고 고(苦)입니다.
무상(無常)은 끝없는 변화를 말합니다.
무아(無我)는 모든 것이 관계해 있으므로
‘무엇과 관계하지 않고는 독립적으로 나라고 할 만한 것이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서로 관계하면서 변화하는 것입니다.
관계는 인(因=원인)과 연(緣=조건)입니다.
변화는 결과(果)입니다.
그리고 변화는 또 다른 원인과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관계하면서 변화하는 것이 바로 인연과(因緣果)법입니다.
사람이 윤회하는 원인과 조건은 바로 어리석은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밝히고 어리석음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불교 공부의 핵심입니다.
2600년 전 석가세존이 마음의 도리를 깨우쳐
위없는 도를 성취하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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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만사의 만법(萬法)은 모두 인연과법입니다.
그 만법은 모두 한마음으로 돌아갑니다.
이 한 마음을 깨우쳐야 합니다.
불교는
마음의 도리를 깨우쳐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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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거사님이 겨울 산을 씩씩하게 내려가며
“스님, 다음 주 일요일에 또 뵙겠습니다.”라는 말이
메아리 되어 울려 퍼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자비불교정토회
정인(正印)합장
2018년 1월 8일
아미타불천일기도 905일
나무붓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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