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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도 부처님처럼

개운당 남광 2013. 5. 3. 09:34

우리도 부처님처럼:

깨달으면 어떻게 되는가?

- 부처님 오신날 봉축 특강(1) -

 

 

 

불자님들

오늘 5월 17일(음력 4월 8일)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은 진리를 완전히 깨달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깨달음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니다.

 

◇ 깨달음에 대한 코살라 국왕의 생생한 증언

 

「코살라국(國)의 왕이 부처님에게,

‘여위고 거칠고 창백하고 힘이 없고 침체된 것처럼 보이는 다른 종교의 많은 제자들과는 달리,

부처님 제자들은 ‘즐겁고 의기양양하고’, ‘기쁨과 환희에 넘치며’, ‘정신적 생활을 즐기며’, ‘감각적으로 만족하며’,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있으며’, ‘평온하고 고요하며’, ‘사슴과 같은 마음’ 등의 밝은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왕은 ‘이러한 건강한 성품은 “이 존경할만한 부처님제자들이 여래(如來)의 위대한 가르침에 관해서 충분하고 훌륭하게 깨달았기 때문임을 알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위 내용은 부처님의 제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깨달아 생활을 하니

다음과 같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1) 즐겁고 의기양양하게 되어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 됩니다.

2) 기쁨과 환희에 넘쳐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3) 감각적으로 만족하니 작은 것에도 만족합니다.

4) 모든 번뇌와 괴로움으로부터 벗어져 있습니다.

5) 사슴과 같은 어질고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니 선업을 계속 짓습니다.

6) 그러므로 마음이 밝고 평온하고 고요합니다.

 

◇ 깨달음은 신비한 환상이 아니다.

이와 같이 깨달음이란 우리 현실과 동 떨어진 신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고통(dukkha)이 근원적으로 소멸된 상태가 바로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깨달음의 상태는 평온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실재(實在)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처님께서는 몸소 깨닫고 실천하시고, 세상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전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메시지 한마디로 영원한 희망(希望)의 기쁨과 행복에 있습니다.

불자 여러분,

불상(佛像)의 은은한 미소를 보십시오!

불교(佛敎)가 이 세상에 전파하는 메시지는

모든 사람들이 즐겁고 의기양양하게, 기쁨과 환희에 넘쳐, 사슴 같은 밝은 마음으로, 건강하게, 평화롭게 고요하게 오순도순 잘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을 불국토(佛國土=부처님의 나라)라 합니다.

 

 

 

◇ 깨달으면 어떻게 되는가?

 

1. 현재순간에 최선을 다한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않게 됩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기분 좋아’하면 그것을 계속 탐닉하여 집착하게 됩니다.

즉 그것을 욕심내어 끝없이 원하게 됩니다. 그 결과 고통이 생깁니다.

반면 깨달은 사람은 “기분 좋아”를 느껴도 더 이상 “욕망의 번뇌”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기분 좋아’를 느끼면 더 받아들이려고 하는 욕망보다는 현재 이 순간 ‘기분 좋아’

섬세하게 여실히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은 현재의 모든 일에 성성하게 깨어있으므로

현재 이 순간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2. 깨달으면 고(苦)나 낙(樂)에 대한 집착이 사라진다.

 

 

(1) 마음과 몸의 관계

명상 중에 의식을 잘 집중해보면 욕망이 생기고 있을 때는 ‘도파민’으로 보이는 물질이 체내를 돌고, 화가 났을 때는 ‘노어아드레날린’으로 보이는 물질이 체내에 도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둘 다 괴로운 것임을 압니다.

즉 그 ‘도파민’으로 보이는 물질이 체내에 돌면 힘이 넘쳐서 경쟁한다든가 일에 심하게 매진하게 되는 데 결국 그로 인에 파로하고 결국 고통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노어아드레날린’으로 보이는 물질이 체내에 돌면 기분이 좋지 않아 반발의 분노가 일어나 질투심이 일어나고 화가 일어나게 되어 또 괴롭게 됩니다.

 

◇ [거친 에너지]인 욕망, 분노는 자신을 멍들게 합니다.

예를 들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 같아도 욕망이나 분노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서 무너질 것 같아 알코올을 섭취한다든지, 과식한다든지, 타인을 비방한다든지, 자기자랑을 한다든가 하는 것으로 도피하게 됩니다.

 

 

(2)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체험

사성제(四聖諦)는 [고집멸도]의 네 가지 위대한 진리를 말하는 데, 이중에서 그 첫째가 일체개고(一切皆苦)하는 것입니다.

일체개고(一切皆苦)란 일체가 고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고통이다.’라고 하면 어떤 이는 ‘그거야 인생에는 괴로움도 있겠지만 즐거움도 있으니, 인생이란 고와 낙이 함께 있는 것 아니냐?’라는 말을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전체로 보면 삶과 죽음자체 모두가 괴로운 것입니다.

 

 

수 년 전 비염으로 고생을 많이 한 적이 있습니다.

비염이 얼마나 심했던지 잠을 잘 때 코가 다 막혀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입을 벌리고 자면 폐나 기관지가 많이 상한다고 하니 억지로 한 쪽으로 돌아누워 있는데 그래도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고(苦)의 연속입니다. 그렇게 끙끙대다가 잠시 코가 뚫리면 마치 극락같이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게 잠시 작은 행복을 맛보면 다시 코가 꽉 막히게 됩니다. 그러면 반대로 돌아눕습니다. 그렇게 또 끙끙대고 고를 느끼다 잠시 뚫리면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행복이 아닙니다. 고(苦)의 상태가 잠시 멎은 상태에서 맛보는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낙(樂)은 없어도 고(苦)는 존재합니다. 낙이라는 것은 고가 없이는 존재하지 않고 고가 잠시 멈춘 상태에서 일어나는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뇌에 가득한 삶 자체는 일체개고라는 것입니다. 고(苦)란 집착(번뇌) 때문에 생겨나므로 고(苦)를 바로 바라볼 수 있고, 번뇌를 벗어나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나 ‘낙’에 대한 집착이 얕아지면 역경에 처해도 초조하지 않게 되고, 차츰 지혜가 생겨 담담하게 일의 해결책을 구상할 수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평상심을 가질 수가 있게 됩니다.

 

3. 어디에도 머무르는 바 없는 것

 

깨달으면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면 보시를 할 때 : 보시하였다는 상을 내지 않은 것이 최상의 공덕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깨달은 자의 입장에서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깨달은 자는 공덕을 위해서 보시를 하지 않습니다. 이를 무주상보시라 합니다.

그러면 보시한다는 상을 가지고 보시하면 공덕이 없는가?

무주상보시가 아니면 위선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무주상보시를 하라고 하는 것은 100% 완벽주의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법집(法執)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100% 무주상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위선을 하다가 차츰차츰 그 순도를 높여가면 됩니다.

밥을 먹는 사람이 ‘나 밥 먹었다.’고 자랑하면 우스꽝스럽습니다.

이와 같이 밥을 먹는 것과 같이 늘 보시를 하다보면

나중에는 보시했다고 상을 내고 자랑을 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무주상보시를 강요하는 것은 법집에 빠진 것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은 어디에도 머무르는 바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4. 일체가 하나 됨을 체득하게 된다.

 

(1) 일체가 하나

깊은 명상의 상태나 또는 화두 선을 하거나 아니면

염불이나 기도를 할 때 깊은 삼매에 들어가면

온 세상이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 분별이 되지 않고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 포근하고 아늑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또 목탁을 치거나 염불을 지극히 할 때

온 세상이 목탁소리 하나만 남거나 염불소리 하나만 남아

모든 것이 적적하고 고요한 상태가 있습니다.

이때는 어떤 생각이나 분별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하나로 됨을 인식하고,

다시 인연과 조건에 따라 하나하나 개성이 주어진다고 보는

인식방법이 바른 깨달음입니다.

깨닫게 되면 “이 우주 만물은 하나다.”라고 생각을 하고서,

“세상은 하나”라는 측면으로부터 관계(상호관련성)를 보게 됩니다.

 

 

(2) 하나이기 때문에 ‘나(내 것 내 것)’라고 주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깨닫게 되면 자신의 생각에 집착하지 않게 되고,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어리석은 탐심을 일으키지 않게 되며, <탐심/ 성냄/ 어리석음/ 아만심/ 의심/ 그릇된 견해> 등 근본번뇌가 사라지게 됩니다.

 

 

(3)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세상을 위해 회향하게 된다.

즉 깨달으면 우주만상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저절로 알고, 생각이나 행동에 일체의 분별심이 없어지고, 평등심과 대비심이 저절로 일어나 일체의 아상이 다 사라지고, 모든 번뇌가 다 사라져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지나간 과거에 대한 회한도 없고, 현재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남을 위한 헌신과 자신의 수행도 게을리 하지 않고 모든 일에 열과 성을 다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세상을 위해 헌신하게 되며, 회향하게 됩니다.

이 세상을 위한 헌신이 바로 전법(傳法)인 것입니다.

끝으로 부처님의 전법선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니다.

 

 

[전법사명(傳法使命)]

부처님께서 위없는 도를 깨우치신 뒤 최초로 교진여 등 다섯 비구에게 진리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청년야사와 그들의 부모 그리고 친구들을 합하여 60명의 아라한이 탄생했을 때

세상을 위해 그들 제자들에게도 부처님과 같이 전법 사명을 맡겼습니다.

이를 전법사명(傳法使命)이라 합니다.

 

[전법사명(傳法使命)]

“수행자들아, 나는 신(神)의 밧줄, 인간의 밧줄을 모두 벗어났다.

그대들도 신(神)의 밧줄, 인간의 밧줄을 모두 벗어났다.

수행자들아, 이제 전법하러 떠나거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사람과 신(神)들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또 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행위를 설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에 더러움이 적은 자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하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다.

수행자들아,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하여 우루벨라에 세나니가마로 가리라.

                                                      <「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4 ․ 5>

 

 

 

불자 여러분 !!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우리 모두 진리를 깨달아

우리도 부처님처럼

온갖 마장과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평온한 마음을 찾고

그 방법을 세상에 알려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 광명으로

어둠의 이 세상을

환하게 밝혀봅시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자비의 등불, 지혜의 등불을 밝혀봅시다.

 

 

감사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정토사(개운선원)

정인(正印) 합장

 

 

2013년 5월 3일

 

 

다음카페   개운선원

http://cafe.daum.net/buddhason

 

     자비송

 

 

출처 : 개운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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