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무한경쟁의 덫에 희생된 아이들”
“무한경쟁의 덫에 희생된 아이들”
불자님들
지난 토요일은 어린이 날이었습니다.
이날 어린이들이 즐겁고 자유롭게 뛰어놀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참 훈훈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을 아이답게 놓아두지 못하고
어른들의 생각으로 꽁꽁 묶어 둡니다.
그래서 요즈음 아이들은 자유롭지 못하고 불행합니다.
불자님들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니다.
[1] 무한경쟁의 덫
◇ 어떤 부부가 아이문제로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때에는 부모 말을 잘 들 듣고 공부를 잘 하였는데 중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도 잘 하지 않고, 부모 말을 잘 듣지 않고 컴퓨터에만 빠져 산다는 것입니다.
이 부부는 재혼을 한 부부로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졌으므로 아이에 대한 부모의 애정이 각별하고 아이를 잘 키우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한문, 태권도, 피아노, 미술 등 가외 공부를 쉴 사이가 없이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도 잘하고 부모의 말을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자 자기 보다 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많아 성적이 중위권으로 밀려나자 부모의 간섭이 더욱 많아지니 공부에 대한 흥미가 더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부모에게 짜증을 잘 내고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또 항상 혼자 있는 버릇이 많아 친구와 사귈 줄 몰라 항상 외톨이로 있어 아이들에게 곧잘 왕따를 당하게 되니 더욱 학교에 가기가 싫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가 그의 유일한 친구가 된 것입니다.
참으로 가련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일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고, 이 시대 우리 모두의 흔한 일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가고 있을까요?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 아이들은 공부보다 노는 것을 좋아 합니다. 그리고 친구와 어울려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그렇게 커야 합니다. 그것이 물 흐르듯 이치에 맞아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이 노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잣대로 오직 자신의 아이를 일등하게 만들어 경쟁에서 이기게 하려는 생각에 골몰합니다.
‘1등! 1등! 1등! 오직 1등!’을 하도록 말입니다.
학교에서의 가르침도 오직 경쟁을 부추길 뿐입니다.
인성 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역사나 도덕 과목은 그 중요성이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실용적인 과목으로 영어, 수학 과학을 제일 중요한 과목으로 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아이들은 인성 교육을 잘 받지 못했으므로
'함께 잘 살아가는 지수'가 세계 최하위권입니다.
청소년들의 사망 원인의 1위가 자살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교육을 하는 나라로 전락한 것입니다.
◇ 이 나라는 아이들에게는 참으로 불행한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무한경쟁과 왕따가 판치는 나라, 자살 제1공화국 이것이 우리 아이들의 현 주소입니다.
이렇게 만든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의 욕구에 다행히 잘 길들여진 아이들이 자라나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사회에 나와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되면 철저하게 자기만 생각하는 무서운 이기주의자로 되어버립니다.
심지어 자기를 키워준 부모의 은공도 모르는 뿌리부터 이기심에 가득한 무서운 인간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아주 혼탁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 그렇게 교육받고 길러진 사람들이 오늘날 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어있습니다.
국회의원이나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이기적인 인간형으로 이미 굳어버려 있습니다.
정치판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경험합니다.
최고 권력주변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부정 스캔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대통령 선거 때마다 정례적으로 나타나는 정치사회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또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자리를 다 빼앗아 가고, 더 많이 가진 자가 가난한 자를 더욱 빼앗아가는 혼탁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 그런데 이 사회현상에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원리는 바로
살벌한 ‘무한경쟁의 원리’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이 살벌한 ‘무한경쟁의 원리’에 피해자로 전락되어 가고 있습니다.
[2] ‘무한경쟁원리’는 극도의 ‘이기심’에 기인합니다.
◇ 우리는 왜 이기적인 무한경쟁원리에 희생되고 있는 것일까요?
이 경쟁원리는 홉스가 말한 소위 ‘만인에 대한 만인에 투쟁, 약육강식의 원리’인 것입니다.
이 원리의 근저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작용을 하고, 이기심의 근저에는 바로 ‘이기적인 에고(我)’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는 물론 정치, 종교, 교육, 사회, 문화 모든 면의 지도자들의 사고 중에
극단적인 ‘무한경쟁원리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받아 왔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이 지구상에 있는 많은 나라들이 왜 이기심에 가득하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지금 이 지구를 지배하는 주류가 무한경쟁원리를 부추기는 사람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며,
오직 자신과 자기와 가까운 것을 위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해 졌기 때문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기독교가 이 세상을 지배하면서부터입니다.
● 왜 그러한가? 기독교는 오직 유일신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신만을 믿도록 강요하며, 그것을 믿지 않으면 모두 사탄(=적)으로 간주하여 버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 모세로부터 유래합니다.
모세는 사막지방에서 자신들의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 강한 믿음을 만들었고, 그래서 지구상에서 가장 지독하고 철저한 이기적인 집단이 되었습니다. 구약성서의 곳곳을 살펴보면 자신들의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는 장면이 수차례 반복되어 나옵니다.
자신의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종족을 다 죽이고 심지어 임신한 여자를 죽이고 그 태아를 끄집어내어 맷돌에 갈아버리는 끔찍한 일을 수없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지구상에서 유태인을 경계하는 반유태주의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20세기 중엽 히틀러의 유태인 대학살 극도 이 반 유태주의 정서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유태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와서 못 박혀 가셨습니다.
예수는 조건 없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신다는 메세시를 세상에 전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동족인 바리새인들에 의하여 도둑의 누명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습니다.
유태인들의 이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가 세상을 떠난 뒤 열렬한 그의 제자들에 의해 기독교의 교세가 크게 확장되자 이를 두려워한 로마가 오히려 예수를 국교로 받아들입니다.
이때부터 인류의 비극이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예수를 조건 없는 사랑을 전하는 인간에서 무서운 신적인 존재로 둔갑시켰습니다. 그것은 4차의 종교회의에 의해 성경을 수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 내용이 다시 구약에 가깝게 가미 되었습니다. 초기 성경에는 없는 삼위일체설을 가져다가 붙여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에서 하느님 자신으로 둔갑시키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을 지어내었습니다.
그리고 살벌한 정복전쟁인 십자군전쟁을 일으키며 세상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갔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교도를 파리 죽이듯 하며 그 전쟁을 성전이라 미화시키며 지금도 진군의 나팔을 불며 지구 끝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식민지후 남쪽이 미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자동적으로 기독교가 성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살던 이승만대통령이 이 땅에 복음화 정책을 실행했기 때문입니다. 불교를 비구와 대처의 싸움판으로 만들게하여 서로 싸우게 하고, 그러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이게 함으로서 불교의 위상을 크게 낮추는데 성공하였으며, 교회의 성장을 위한 온갖 혜택을 다 주었습니다.
이 이후의 미국의 눈치와 힘을 등에 업은 대통령들이 줄줄이 나와 교회주의, 성장주의, 무한경쟁을 부추기며 타락한 서구문화를 마구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교회가 한집건너 있을 정도로 크게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 이 세상은 예수의 아가페적인 사랑은 온 데 간데없고, 다시 유태주의와 같이 유일신을 믿는 무리로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지구상에 극도로 이기심 많은 사람들이 계속 판을 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러시아의 대문호인 톨스토이가 ‘예수가 가신 뒤 이 땅은 예수님의 사랑은 간곳이 없고, 오직 교회주의만 남아 있을 뿐이다.’라고 개탄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십계명이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기독교인들의 뇌리에 더 강하게 심어진 것은 바로 극도로 발달한 이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이 땅은 예수의 진정한 사랑의 가르침이 실종될 위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유럽에서는 날조된 성경이 속속 밝혀지면서 기독교의 인구가 급격히 줄어가고 있습니다.
과학과 인터넷의 발달로 그동안 몰랐던 성경의 날조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시대 4차의 종교회의에서 최초의 성경이 날조된 사실이 만천하에 들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합리적인 종교인 불교와 부처님의 가르침이 다시 서구인들에게 각광을 받게되었습니다.
유럽의 많은 교회와 성당이 박물관이나 고급레스토랑으로 경매되어 팔려나가고 있게된 것입니다.
[3] 이 땅에 왜 기독교가 성한가?
지금 이 세상에는 극도의 이기주의자 수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그것은 날조된 성경에 의해 그릇되게 많은 사람들이 길러졌기 때문입니다.
내 종교가 제일이고 다른 종교는 사탄으로 몰아버리는 교리 때문입니다.
이슬람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이러한 아집과 아만과 이기심이 종교내부에 이미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이 종교 때문에 너와 나를 구분하는 사고방식이 길러져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제로 주입하려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것을 챙깁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같은 교회에 다니는 자신들끼리는 단합이 잘 됩니다.
그런데 교회가 분열되면 또 서로 헐뜯기 시작합니다.
태생이 시비와 분쟁 그리고 이기심이 가득한 교리 때문입니다.
이 아만심과 아치심과 극도의 이기심 그리고 무한경쟁은 다 ‘나(我=에고)’라고 하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근세에서 서구 열강이 후진국 사람들을 자신들의 종교를 믿지 않는 다는 그 이유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살해 했습니다.
아메리카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디언을 학살하고 또 학살했습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신부와 수녀를 앞세워 잉카제국의 문을 열게 한 다음 그 뒤에 총칼로 그 제국의 모든 사람들을 씨도 남기지 않고 다 죽여 버린 역사적인 사실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큰 죄악을 저지르고도 그것이 죄인지조차도 모르게 길러진 것은 바로 그들의 그릇된 믿음의 온상인 변질된 성경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자는 사탄이므로 사탄을 다 죽여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일일 뿐입니다.
이 얼마나 큰 인류의 비극입니까?
또 그들의 사고는 동물이나 자연은 오직 인간을 위해 존재해 있는 것으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게 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인 미국이 자연보호에 가장 소극적인 이유가 그들의 사고방식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 지구상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독교가 번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네 삶은 더욱 어려워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극단적 이기주의를 양산하는 종교와 사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와 사상에 의해 교육받아 살벌한 경쟁자로 바뀌고, 약자를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전사로 바뀐 기형적인 인간이 득실거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만 잘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아메리카드림을 꿈꾸며 변질된 기독교에 흠뻑 졌어듭니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불신지옥’이라는 띠를 두르고 세상의 곳곳을 골목의 곳곳을 누빈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한집건너 교회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잘살고 부강한 미국 사람의 행복지수는 하위권입니다.
반대로 세계 최고 빈국인 티벳이나 인도 동남아 지역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상위권에 있습니다.
또 물질적으로 잘살기를 갈구하는 우리나라가 자살 증가율이 세계 1위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유일신을 믿는 나라 국민들의 대다수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며, 이유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은 가질수록 더 가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며, 행복은 정신적인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보고 자신이 즐거움을 느낄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기심이 있는 한 그러한 행복을 맛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변질된 기독교를 아무리 믿어 봐도 그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가페적인 사랑을 가르친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와야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4] 동업(同業) : 같은 배에 탄 사람은 운명을 같이합니다.
◇ 그러면 불교를 믿는 사람은 어떠한가?
풍랑을 만나면 함께 배를 타고 가는 사람이 모두 위험에 빠지는 것과 같이, 이기적 경쟁원리가
이 세상을 지배하면 함께 살고 있는 착한 사람들도 모두 희생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례 주인공 불자님처럼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이 1등!, 1등! 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이기적인 경쟁원리에 깨끗한 마음이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 부처님은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을 경계하셨습니다.
“만일 세상 모든 일이 오직 신의 뜻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나쁜 일 하고도 그것이 하늘(신)의 뜻이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라고 하셨습니다.
살인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사음을 하거나 더 흉한 일을 하고도
이 모두가 하늘의 뜻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기독교 역사를 보면 수많은 이교도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하나로 학살을 자행한 사실을 많이 가득합니다.
만일 그들에게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정말 회개할 일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땅의 기독교인들은 성경과 목회자들의 말에 쇠뇌가 되어
이교도를 살인하는 것이 나쁜 일인 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인류의 비극은 모세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구약성서를 읽어보면 자동적으로 알게 됩니다.
이 모두가 나만 살고 나만 이익 되게 하려는 극단적인 이기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이기심이 바로 모든 번뇌와 불행의 씨앗이 된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 이기심은 우리 중생의 마음 밑바닥에 뿌리 깊이 존재하는 번뇌입니다.
그것은 세세생생 유전되어오는 무서운 번뇌를 말합니다.
[5] 인류의 희망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습니다.
◇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깨어나야 합니다.
이기적인 경쟁원리에 벗어나 함께 잘살아가는 상생의 원리를 찾아야 합니다.
상생의 원리의 첫걸음이 바로 상대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모두가 이익 되는 길을 찾아
나도 살리고 너도 살리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길을 가려면 항상 일어나는 아만심, 아치심, 이기심을
조복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수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를 버리는 수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즉 생활 속에서 무아(無我)의 실천이 필요한 것입니다.
◇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 된다.
마음은 주(主)가 되어 모든 일을 시키나니
마음속에 악한 일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도 또한 그러하리라.
그 때문에 괴로움은 그를 따른다.
마치 수레를 따르는 수레바퀴 자취처럼.”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 된다.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청정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른다.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현대 태국의 큰 스승인 <아잔 차>스님이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은 단 한 권이다.
그것은 바로 마음이라는 책이다.”
“깨어 있으라. 무엇에도 얽매이지 말라.
마음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물 흐르는 대로,
있는 그대로 놓아두라.”
“모든 것이 마음에서 일어남을 보는 것이야 말로
<수행의 핵심>이다.”
◇ 이제 아이들을 아이답게 키워야 합니다.
부모의 코드에 맞게 키워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대리 만족일 뿐입니다.
마음공부를 많이 한 불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스님 저는 마음공부를 하고부터는
아이들이 스스로 하도록 놓아둡니다.
설령 친구들하고 신나게 놀면 그대로 둡니다.
그리고 잠을 자는 아이는 실컷 자도록 놓아둡니다.
대신 따뜻한 말로 ‘얘야, 너는 무슨 공부를 하고 싶니?’
또는 ‘어떤 공부가 잘 되니?’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잘하는 부분을 칭찬해 줍니다.
그리고 가슴에 아이들을 꼬옥 안아 줍니다.
또 하고 싶은 공부를 하도록 격려해 줍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건강하게 잘 커 주는 모습만 보아도
감사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 아이 아빠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아이들을 대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항상 기쁨에 넘치고 학교 다니는 것을 매우 즐거워합니다.”
◇ 누가 쓴 대본인가?
누가 쓴 대본에 따라 웃고, 울고, 좋아하고 싫어하는가?
누가 쓴 대본에 따라 기뻐하고 슬퍼하고, 행복하고 불행해 하는가?
그 대본을 하나님이 쓰는가?
붓다가 쓰는가?
아니면 운명이 쓰는가?
부모인가? 세상인가?
그렇지 않다.
그 대본은 우리 자신의 마음이 쓰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쓰는 대본에 따라 우리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즐거워하고 불만족스러워 하는 것이다.
그 마음이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드는 것이다.
그 마음이 기독교도 만들고 불교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공부를 평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정토사(해인선원)
정인(正印) 합장
2012년 5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