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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진리의 맛 ~ 수행의 효과 >>

개운당 남광 2009. 6. 15. 09:40

 

 

 

 

  << 진리의 맛 ~ 수행의 효과 >>


  ◇ 우리가 불교의 진리를 배우고 공부하더라도

      머릿속으로 알고 이해하는 것 만으로서는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배운 바를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설탕 맛이 어떠한지는

      팔만대장경을 다 설해서 이야기한다고 해도

      직접 설탕을 입에 넣어 맛보기 전까지는

      설탕 맛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체득해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불교 공부인 것입니다.

      이와 관련한

      경전의 말씀을 살펴봅니다. 



  ◇ 보살은 그릇됨이 없는 설(設)과 그릇됨이 없는 법(法)에 머물러 말하는 것이 성실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는

      그대로 수행하여 신(身). 구(口). 의(意)를 청정히 하고 온갖 잡염(雜染)을 떠난다.

                                                                                                                           - <화엄경(華嚴經)> -


  ◇ <질문>


    “법계(法界=진리의 세계)는 한 모습이요, 부처의 체성(體性)에는 둘이 없다.(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진여(眞如)를 염(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온갖 선행(善行)을 닦아야 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대답>

    “ 비유컨대 대마니보(大摩尼寶=보석)의 체성(體性)은 본래 청정하지만 흙에서 막 캐어 낸 광석(광석)에는 더러움이

   끼어 있으므로, 설사 사람이 그 보배로서의 본성(本性)을 아무리 염(念)한다 해도, 적절한 방법에 의해 갖가지로 갈고

   다듬지 않을 때는 끝내 청정해지지는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생의 진여법(眞如法) 또한 그 체성은 공적(空寂). 청정하다해도, 그것으로 족할 수 없고, 적절한

   방법에 의해 갖가지로 닦지 않는다면 역시 청정해지지는 않는 것이며, 더러움이 무량무변(無量無邊)하여 온갖 것에

   두루 미치고 있는 까닭에, 온갖 선행을 닦아 그것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온갖 선법(善法)을 수행한다면,

   저절로 진여법(眞如法)을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기신론(起信論) -

      


  ◇ 불교를 믿고 공부하는 이유는

      마음의 평안을 찾고 행복해 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평안과 행복은

      가족이나 이웃이 고통 받고 있는데

      자신만의 평안과 행복을 찾겠다는 것은

      어쩌면 지극한 이기심일 수 있습니다.


      함께 반야용선을 타고

      고해의 언덕을 건너

      우리 모두 해탈의 길로 가야합니다.

 

      부지런히 정진하고, 큰 자비심을 일으켜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길이

      바로 함께 사는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해탈입니다.

 

      너와 나, 우리 모두 오순도순

      이해하며 도우며, 평화롭게

      행복하게 잘 사는 길이 바로

      이화세계요, 불국정토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남광 합장

 

 

출처 : 개운선원
글쓴이 : 남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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