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당 남광
2009. 5. 27. 20:17

진묵스님- 노모의 영전(49제)에 바친 제문(齊文)
사모곡(思母曲)
胎中十月之恩 何以報也 태중시월지은 하이보야
膝下三年之養 未能忘矣 슬하삼년지양 미능망의
萬歲上更加萬歲 子之心猶爲嫌焉 만세상갱가만세 자지심유위혐언
百年內未滿百年 母之壽何其短也 백년내미만백년 모지수하기단야
簞瓢路上行 乞一僧 旣云已矣 단표로상행 걸일승 기운이의
橫釵閨中 未婚小妹 寧不哀哉 횡차규중 미혼소매 영불애재
上壇了 下壇罷 僧尋各房 前山疊 後山重 상단료 하단파 승심각방 전산첩 후산중
魂歸何處 嗚呼哀哉 혼귀하처 오호애재
태중에서 열 달을 품으신 은혜를 어떻게 갚으리까.
슬하에 삼 년을 키우심도 잊을 길 없나이다.
만 세 위에 다시 만 세를 더 살지라도 아들의 마음은 오히려 부족하온데
백 년 안에서 백 년도 채 못 사셨으니 어머님의 수명은 어찌 이다지도 짧으십니까.
표주박 하나로 길거리에 걸식하며 사는 저는 이미 말할 것 없사오나
규중에 혼자 남은 어린 누이동생은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이제 벌써 상단불공도 마치고 하단 제사도 끝나서 스님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처소로 돌아갔습니다.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 또한 겹겹인데
어머니의 혼은 어디로 돌아가셨습니까. 오호라. 슬프고 슬프도다.
당대의 걸출한 도승이면서 명,문장가인 진묵(震?, 1562~1633)스님은 노모가 세상을 떠나자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지극지성으로 49재를 올리셨다.
그때 진묵 스님이 슬피 울면서 노모의 영전에 바친 제문은 전국 승려에게 전파되면서 그 제문을 받아 읽은 많은 승려들이 떠나온 어머니를 생각하고 효도를 하지 못한 자책감에 대성 통곡하였다 한다.
어쩌면 진묵 스님의 제문은 만 세기를 두고 불교가 존재하는 한 모든 승려들의 사모곡이 될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자신의 처지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스님은 어머니의 병구환을 하느라고 혼기를 놓쳐서 결혼을 하지 못한 여동생이 가장 마음에 걸려 더욱 가슴 아파했던 것 같다. |
출처 : 선법의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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