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유골 마구 뿌려요.....
부모님 유골도 마구 뿌려요.....
◇ 요즈음 장례식장에 가보면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도 산소를 쓰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또 화장을 한 후 분골을 납골당에
모시는 것도 그렇게 많지 않다.
유족들이나 자손들이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반드시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니다.
특히 매년 부모님이나 조상님 산소나 납골공원에 참배하기 싫어서 강물이나 산천에 뿌린다고 한다.
물론 고인이 특별히 부탁한 경우에는 분골을 뿌리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유족 자신들의 편리나 이기적인 생각으로 그러한 행위를
서슴없이 한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참으로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요즈음 모 종교를 많이 믿는데, 그 종교 성직자들이 자기 종교를 믿으면,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라고 전도할 때 이삼십대 젊은 여성층에 이 맨트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호응이 참 좋다고 한다.
요즈음 일부 젊은 층 여성들은 제사를 지내는데 시댁에 잘 안 간다고 한다. “ 뭐 당신은 우리 할머니나 조상님 제사에 오기나 하남?”
하면서 제사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그 여성들의 조상 제사 때는 물론 남자 배우자가 가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생각은 정말 개인주의적 이기주의적 발상이다. 결혼을 하면 부부가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 부모 너 부모,
내 조상 너 조상 따지지 말고 서로 오순도순 손잡고 왕래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세태는 갈수록 이러한 분위기는 점점 없어지고, 너 부모 내부모를 먼저 따지고 급기야 부모도 조상도 기리는 일도
아예 없애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서구의 극단적 이기주의에 완전히 물들었기 때문이다.
◇ 인류가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장례에 관한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의 중대사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매장, 풍장, 수장,
화장 등 장례법이 각 민족이나 지역 풍습으로 전승되어 왔는데, 중요한 것은 한결같이 고인에 대한 깊은 애도와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은
거의 공통된 사항입니다.
그런데 지금 일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노인 학대와 또 부모나 조상의 묘소나 납골을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는 이러한 세태는
하루 빨리 정상을 찾아야 합니다.
서양의 극단적 이기주의 망령이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빠른 속도로 전염되고 있음은 참으로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부모가 없으면 우리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또 조상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있게 한 조상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부모은중경과 지장경등에 부모님의 은혜와 공덕에 대하여 설하고 있습니다.
몇 일전 한식날을 맞아 부모님과 조상님의 은덕을 기리는 법문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 부모가 없으면 우리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또 조상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있게
한 조상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조상님을 기리고 섬기는 것은 결코 우상 숭배가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예의입니다.
우리가 해와 달을 볼 수 있는 것은 부모님과 조상님의 은덕입니다.
◇ 어제 일요일 낮에 98세 되시는 할머님 영가를 모셨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삼귀의를 모시고 위패 및 납골 봉안식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70세정도로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고인 앞에 절을 하다가
말고 갑자기 “아이고 엄마야~”하며 뒤로 벌렁 나자빠져 누워버렸습니다. 물론 저도 내심으로는 약간 놀랐습니다.
그래도 겉으로는 태연한척하며 엄숙하게 의식을 진행했습니다. 물론 다른 유족들의 도움으로 그 할머니는 조용한 방으로 모셨습니다.
의식을 하면서 순간적으로 그 고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이렇게 고인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나
고인에게 섭섭하게 한 경우가 있는 사람에게 영가가 내리는 일종의 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육신을 벗어도 49일 동안 의식의
잔상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시기에 고인은 여러 가지 자신의 의지를 보이기도 합니다. 이때는 고인 스스로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산 사람의 몸과 의식을 빌려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를 전문 용어로 차식(借識)이라 합니다.
봉안식이 끝나고 그 할머니를 불러 상담을 해 보았습니다. 평소에 큰 병도 없었고, 고혈압이나 저혈압도 없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고인의 친 딸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자기가 넘어졌다는 사실도 전혀 기억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전형적인 차식이 일어난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즉 이 상태는 그 고인이 소란을 피우기 위해 딸 몸과 의식을 잠시 빌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의식을 주재하는 스님에게 강한 메시지를 준 것입니다.
몇 년 전 고인의 남편 즉 쓰러진 할머니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가족들이 산소를 만들기가 귀찮아서 바다에 분골을 뿌렸다고 했습니다. 이 때 그 고인은 많이 섭섭해 했다고 합니다. 또 이번에도 자식들이 어머님을 바다에 또 뿌리려고 하다가 어머님마저도 산소도 없고, 납골도 없으면 너무
허전할 것 같아 오봉산 추모공원에 모시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십구재는 경비문제로 아직 가족끼리 결정을 못하고 미루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때 영가가 강한 메시지를 준 것입니다. “ 아무리 어려워도 (고인) 자신을 위해 사십구재를 해 달라.”는 표시입니다.
왜냐하면 고인 딸이 뒤로 넘어졌기에 스님이 그 뜻을 알아채고 유족들에게 “영가를 위해 마지막 효도로 사십구재를 단재(1번)라도
해주야 합니다.”라고 말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장례식장에 갔다가 종종 대형 참사가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고인과 원한관계나, 섭섭한 일이 있는 사람에게 고인이
화풀이를 하는데 이것이 지나쳐 그 한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줄초상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을 당하면 유족은 물론 친지들도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고인의 왕생극락을 지극정성으로 기원해야합니다.
만일 고인과 생전에 좋지 않은 일을 가진 사람들은 고인 앞에서 지심으로 참회하면 고인은 용서해줍니다.
이 때 만일 고인의 죽음에 희희낙락하거나 속으로 잘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고인이 화를 냅니다.
그 화를 당한 것을 “축(逐)”만났다고 합니다.
◇ 결국 오늘 유족들이 고인을 위해 마지막 효도를 위해 사십구재 중 단재(마지막 한번)라도 지내기로 하였다. 그런데 사실 사십구재를
하는 의미는 고인이 육신을 벗고 난 후부터 다시 몸을 바꾸기 전 49일간에 부처님의 진리의 법문을 듣고, 크게 깨우쳐서 이제 천상에
나거나 극락왕생하여 궁극에는 윤회를 벗어나는 인연을 짓게 해주는 것입니다.
● 영가님의 이고득락을 위해 스님과 유족들이 한마음이 되어 지극정성을 다할 때 고인은 그 힘에 의해 부처님의 무상법문을 깨우치고
극락왕생의 인연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예불을 마치고
일체 제 인연영가(개운선원 회원님의 모든 조상님)의 왕생극락을 빌며~
법당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며
부모님과 조상님이 없으면
“어찌 내가 저 해와 달을 볼 수 있으리요.”라는
경전을 생각하며~
가슴속으로부터
나무 아미타불을 외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