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문 - 법문, 좋은글/♧--붓다의 말씀

대열반~부처님 열반일을 맞아

개운당 남광 2008. 3. 22. 05:06
 

 대열반 -부처님 열반일을 맞아


  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오늘은 음력 2월 15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열반이 도대체 무엇이며, 또 대열반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왜 부처님은 열반에 가까워지자 큰 도시를 버려두고 피땀을 흘리며

    궁벽한 구시나가로 행진하였을까요?


부처님께서 성도를 이루신 후 48년간 오직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온 몸을 던져 법을 설하시고, 탐진치 삼독의 큰 병에 신음하는 많은 중생들을 구제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세수 80이 되신 노 붓다는 늙고 병들고 지친 몸을 무릎 쓰고, 육신의 낡은 수레를 굴리며 행진하였습니다.


  붓다는 이제 입멸을 위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숨이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지막으로 작고 궁핍한 마을, 외로운 사람들의 곁으로 갔습니다.


   무엇 때문에 붓다는 그렇게 하였을까? 그 동기는 오직하나 모든 생명들에 대한

  끝없는 연민 때문이었습니다.


   눈빛 찬란하게 빛나던 청년 붓다시절엔 천지를 압도하는 마가다의 대행진으로   장엄한 법 바퀴를 굴렸고, 그 후 45년간 수많은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에 담마(진리)를 전했습니다. 


  ● 이제 마지막으로 그 궁핍하고 작은 도시에 와서 담마를 전해주려는 온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이요, 그 마을 사람들에 대한 대자 대비한  배려였습니다.


   목숨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마을 사람인 <수밧다>라는 나이 많은 사람의 귀의를 받아 제자를  받아들이고, 그를 위해 담마를 설하는 모습은 왜 붓다가 큰 도시를 버려두고 작고 궁벽한 이 구시나가로 온 것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열반이란 무엇일까요?

 

 ◇ 열반이란 작고 궁핍한 사람들 곁으로 가는 것입니다. 작고 궁핍한 흙벽 집 사람들 곁에서, 작고 외로운 사람들 곁에서, 보잘 것 없는 외로운 것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사는 것, 그것들과 함께 가는 것. 이것이 대열반입니다.


 ◇ 보통 열반을 견성 또는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견성(見性)은 자신의 본성(本性),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깨달음은 그대로 본성을 보고 본성대로 사는 것(실천행)을 말합니다.

  이것은 열반~깨달음이 한갓 관념의 변화(대 의식전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삶의 문제와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행동을 할 때 담마(진리)로서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 이 열반의 삶은 죽음의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으로 여실히 드러나게 됩니다.

   따라서 삶과 죽음의 실제상황을 떠나서, 이 열반~깨달음의 문제를 학문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 공(空)에 메여 공의 도리를 깨우치느라 한 세상을 보내시는 분이 많습니다. 무엇을 위한 공(空)이며, 무엇을 위한 깨달음입니까? 이제 나 혼자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지 맙시다. 형제와 이웃이 고통 속에 있습니다. 그들을 외면하고 혼자 깨달으면 무엇 합니까? 이제 개인적인 해탈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맙시다. 이제는 사회적 깨달음, 사회적 해탈을 해야 합니다.

 바로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한사람이라고 더 깨우치게 하신 저 위대하고 숭고한 부처님이 바로 사회적 깨달음의 숭고한 길을 가셨습니다.   


◇ 구시나가라 사라쌍수 언덕~ 버림받은 땅, 고단하고 외로운 민중들의 고향, 바로 이곳에서 마지막 한 중생이라도 구제하려는 일념으로 노 붓다의 비틀거리며 행진하는 그 자체가 대열반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3] 붓다의 마지막 말씀을 들어봅시다.


  ◇ “아난다야, 내가 입멸한 뒤 그대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지 모른다.

     <이제 스승의 말씀만 남아 있지, 우리들의 큰 스승은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아난다야, 그대들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입멸한 뒤에는,

     내가 지금까지 그대들에게 설해 왔던 법과 율, 이것이 너희들의 스승이니라.”


  ◇ “ 그대 수행자들이여, 이제 그대들에게 선언하노라.

       < 조건 지어진 것은 모두 멸해 가는 법(모든 제법은 무상한 것),     

         부디 게을리 하지 말고, 힘써 정진하라. >”


[4] 아~ 위대한 낙조여 


 ● 라자가하에서 구시나라까지~

   노 붓다의 마지막 삶의 행진하시는 모습을 그리며 함께 따라가 봅니다.

 

   “ 아 위없는 위대한 성자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구나!”하고 감격했습니다.

    

  ◇ 구시나가라 사라쌍수 언덕~ 버림받은 땅, 고단하고 외로운 민중들의 고향, 바로 이곳에서 마지막 한 중생이라도 구제하려는 일념으로 노 붓다의 비틀거리며 행진하는 그 자체가 대열반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대열반의 실상이 바로 이것이구나!”하며, 그동안 관념론에 빠져 열반을

 이치적으로만 생각하려던 나의 우매함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목숨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마을 사람인 <수밧다>라는 나이 많은 사람의 귀의를 받아 제자를 받아들이고, 그를 위해 담마를 설하는 모습은 눈물겹습니다.


   “~ 아난다야~ 내 마지막 제자를 막지 말라.”하시는 그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그 말씀이 나의 귀에 맴맴 돌고, 가슴에 울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법륜의 바퀴를 멈추지 않고, 저 서산에 붉은 해 지면서

온 누리 대지를 붉게 물들이게 합니다. 아~ 위대한 낙조여~


   “ 아~ 나도 부처님같이 살아가리라, 우리 모두 부처님같이 살아갑시다.”

  

     부처님 열반재일을 맞이하여~


     부처님께 목숨 바쳐 귀의합니다.               (귀의불)

     부처님가르침에 목숨 바쳐 귀의합니다.         (귀의법)

     깨달음을 얻으신 승단에 목숨 바쳐 귀의합니다. (귀의승)


     남광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