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태산 기행~
대각국사(의천)영정 참배기
(중국 천태산 기행문)
☐ 중국 태극권 태사부를 상해에서 만나다.
내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마침 중국에서 파룬궁 사건으로 기공 수련하는 사람들이 곤욕을 치를 때였다.
파룬궁은 중국에서 생긴 일종의 수련단체이나 정치색을 좀 띠어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나의 첫 방문지는 상해에 있는 상해 중의과 대학 이었으며, 그곳에서 나의 태극권사범의 정 사부님(태사부)을
만나게 되었지요. 그 당시 그는 중의과 대학 교수직을 은퇴하여 연금으로 생활하면서, 주중 4일은 연고가 있는
환자분에게 왕진하여 치료해주며, 3일은 은거하여 불도와 태극권 수련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양가식태극권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30년 전 대학 다닐 무렵부터 요가 수련 및 기 수련을
해오던 나였지만, 이 태극권에 심취하여 태극권의 본고장을 찾게 된 것이다. 상해에서 태극권의 고수들로부터
양가식, 진가식(정자 태극권)의 실제 연무하는 동작과 추수대련 등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었다.
☐ 중국 천태산 기공원 방문과 내공 시범(?)
그 교수님의 안내로 천태산의 천태 기공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중국 태극권 고수의 진가 태극권
시범을 관람했고, 우리 사범도 그 곳에서 진가 태극권 시범을 보여 많은 사람들의 갈채를 받았다.
(참고로 당시 필자는 출가 전 이었다.)
나는 중국 천태사 주지스님과 내공 관련 시범을 보이게 되었는데, 그 주지스님은 허풍이 참 많아서 시범
보이기전 30분 동안 장황하게 자신의 도력을 자랑하는 것 이었다. 가부좌를 하여 참선하는 동안 온갖 신장들을
다 조복 받고, 신령스런 원숭이로부터 공양을 받는 등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래도 관람하는 중국 사람들은
엄숙하게 들었다.
나와의 시범은 결가부좌로 얼마나 오래 동안 앉아있는가 하는 것 이었다. 천태현 지방 방송국과 기자들도
온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숨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의자나 침대생활을 많이 하므로 결가부좌자세를 하는 사람은 참선하는 스님들 외에는
드물다. 그러나 우리나라사람은 이 자세를 잘 취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나는 이 자세로 근 30년을 수련했으니
누워서 식은 죽 먹기였다. 결과는 우리 팀이 우승하였고 ,나의 물구나무서기 (20분) 시범은 기립박수도 받았다.
시범 일정을 마치고 천태 기공원을 두루 방문 했는데, 주로 기공을 의술로 활용하는 곳이었다. 저녁에는 기공원장
주최 만찬에 참석하여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 천태사에서 대각국사(의천)님의 영정을 참배하다.
기공원에서 1박하고 다음날 기공원 바로 뒤에 있는 천태산에 갔다. 천태산은 중국 남부 해안지방에 위치해있고
그 유명한 천태종의 종주 지의대사가 있던 천태사가 있는 곳이다. 그 천태사에서 나는 고려국 의천대사의 영정을
보고 감격했다. 대사께서 중국 유학시절 이곳에서 천태종의 종지를 터득하셨으며, 이 절에서는 천태 지의대사와
나란히 모셔져 있었다.
아~ 이것이 무슨 인연이란 말인가 ? 우리의 역사책 에도 그러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참배 후 한동안
말없이 서 있으면서 절 주위 바위 곳곳에 그 유명한 한산의 시를 보면서 있노라니, 내가 마침 천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천태사 뒤 반대편 산 팔부 능선에 유서 깊은 국청사가 있다. 그 곳 주지스님과 태사부가 나누는 도담도 참
인상적이었다.
“ 스님 요즈음 무슨 책을 보고 계시오? 좋은 책 있으면 한권 빌려 주구려~ ” 하니 “허허, 교수님이
아직 읽을 책이 남아 있답디까?”하면서 서로 예를 갖추고 허허롭게 덕담 나누며 차를 마셨다. 나는 그 분들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절 아래 그 폭포 흐른 곳에서 내가 마치 선계에 온 듯 한 착각을 할 지경 이었다
☐ 동정호에서의 태사부 님과의 대화~
상해로 돌아오는 길에 그 교수님(태사부)을 모시고 동정호에 갔다.
동정호 속에 섬이 있고 섬 속에 또 호수가 있다. 그 호수 가에 수양버들이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 교수님이
갑자기 나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 저 버드나무를 보면 무슨 생각이 나는 가요?” “네, 부드러운 기운을 느끼니, 유가 강을 제압하는 이치가
생각나니 특히 양가 식 태극권이 생각납니다.”하고 대답하니, 또 이렇게 물었습니다.
“태극권(기공)과 불교와 도교는 어떤 관계인가요?”라고 하자 나는 “네, 하나이지요.” 이렇게 답하자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때는 그 질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 때 나는 그 노교수님의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감명을 많이 받았다.
☐ 드러내지 않는 참수행자
그 노교수님은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는 자기만의 생활을 특별히 공개해 주셨다. 한국에서 온 제자의 정성에
대한 답이었으리라.
그 교수님은 정년퇴직을 하였기에 연금으로 생활하고 계셨다. 그런데 본래 중의사이시므로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아프다고 연락이 오면 상해시내는 물론 먼 시골까지 왕진을 가신다. 침통하나와 약간의구급약만 소지한
채 아무 구애 받지 않고 치료해준다.
고맙다고 돈을 주어도 거의 받지 않는다. 그래도 억지로 주면 차비정도만 받는다. 함께 왕진을 따라가 보았는데
가난한 시골 촌로였다. 소탈하게 서로 웃으며, 친구처럼 치료해주고 치료받는 모습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래서 그 교수님은 일주일에 4일은 그렇게 진료 봉사하시고, 3일은 상해에서 2시간정도 떨어진 외딴 서민아파트에
간다.
그 곳은 방 2개에 거실이 하나인데, 그 분의 숨겨진 수행 장소이다. 우리나라 아파트에 비하면 참 보잘 것 없는
곳이다. 인테리어는 전무하고 아무른 가구도 하나 없는 곳이다. 방 하나에는 작은 부처님 한분 모셔 두었고, 벽에는
그 분이 좋아하는 천태산에 있는 국청사 아래의 폭포수 사진이다. 크게 확대하여 그 앞에 있으면 시원한 폭포수 물이
쏟아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명상할 때 활용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또 방은 신기하게도 온돌식이었다. 좌식으로 생활하시는 것이 우리나라 선비를 상기시켰다. 그 연유을 묻자 자신의
조부가 만주에 있을 때 한국에서 온 스님에게서 배운 것이라 했다. 아~ 참 기이한 인연이로다.
그래서 그 분은 한국 고승들의 수행방식을 흠모했기 때문이라 했다. 그 곳에서 한시도 쓰고, 묵화 그림도 그리고,
퉁소도 불고, 또 참선하고, 염불하고, 독경하고, 태극권 수련까지 하니 이분이 발로 숨은 수행자요 참 신선이요,
불보살이 아닌가?
그 당시 이 여행이 그 후에 있을 나의 운명을 바꾸게 될 줄은 몰랐다. 다만 “그래 나도 언젠가는 저분처럼 참된
인생을 살아야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난생 처음 간 중국여행을 정말 보람되게 보내고 왔다.
☐ 대각국사(의천)님의 영정 아직도 눈에 선한데~
지금은 출가하여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고 있지만
그때를 생각해보니 감회가 새롭다.
천태산에서 뵙고온 대각국사 의천대사님의 영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